"내 나이가 어때서" 만학도 여성 '늦깎이' 졸업

입력 2017-02-24 11:28
수정 2017-02-24 14:14
"내 나이가 어때서" 만학도 여성 '늦깎이' 졸업

학력인정 평생학교 일성여중고 졸업식

(서울=연합뉴스) 김현정 기자 = "너무 예쁘다. 나도 좀 찍자, 웃어 김치!"

형형색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60∼70대 여성들이 24일 오전 서울 마포아트센터를 가득 메웠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30분 전 졸업식 리허설을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은 서로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며 "예쁘다"며 서로의 옷매무시를 고쳐주는가 하면 서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왜 집중을 안 하세요"라는 선생님의 따끔한 한마디에 시끌벅적하던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일제히 선생님을 향하다가도 "저만 보면 안 돼요"라는 남자 선생님의 작은 농담에 이내 까르르 웃음을 보이는 모습이 10대 소녀와 다름없었다.

이들은 이날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 일성여자중고교를 졸업했다. 과거 1930∼1960년 전쟁과 가난으로 어려웠던 시절 학업 기회를 놓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날 졸업자 544명 중 고교 졸업생 224명은 모두 대학에 합격했다.

곱게 화장을 하고 설렌 표정으로 졸업식장을 찾은 김도연(58)씨는 인덕대학 도시환경디자인학과에 진학한다.

"딸이 대학 졸업하는 해에 '이제 내 차례구나' 싶었다"며 그 해 배움을 시작했다는 김씨는 "학교 졸업 후 복지와 관련된 봉사활동 등을 하고 싶다"며 기대를 내비쳤다.

여느 학교와 달리 일성여중고 졸업식에서는 '문학 특기상', '한자읽기 특기상', '사자성어 특기상' 등 다양한 상이 수여됐다.

왕복 6시간 거리를 다니며 공부한 학생, 고령의 나이에도 학업에 매진한 학생들에게 상이 주어졌다. 이날 최고령 나이인 88세에 졸업하는 중학교 3학년 6반 김순실 씨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1.4후퇴를 거치며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며 "내 나이 서른 살, 1.4후퇴때 남편이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해 과부가 됐다"고 했다.

"요즘 시대에는 88세가 건강한 청춘"이라는 김씨는 일성여고 진학을 앞두고 있다.

서강대 심리학과에 합격한 박상순(67)씨는 "옛날에는 중학교 못 가서 속상하단 생각조차 못 했다"며 "그러나 배우지 못했기에 사람들이 얘기하면 자신감이 없어 늘 뒤에서 얘기를 듣기만 했다"고 했다.

이날 졸업생 중 가장 원거리에서 통학한 학생은 충남 예산에 사는 진덕순(54)씨다.

마포에 있는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승용차, KTX, 버스 등을 갈아타며 총 6시간 걸리는 먼 거리지만 배움의 열정으로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이선재 교장은 "과거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여러 개인 사정으로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만학도들이 배움의 열정으로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며 "열정적인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졸업식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손혜원 의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일성여중고는 구한말 지식인 이준(李儁) 열사의 고향 함경북도 북청 출신 실향민들이 1952년 설립한 야학이 시초다.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힘쓴 이 열사의 뜻을 기려 학교 이름도 그의 호 '일성'(一醒)에서 땄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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