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찢어진 다리로 만든 이승훈의 4관왕…희생과 배려 가치 심었다
(오비히로<일본 홋카이도현> =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사실 반신반의 했어요. 과연 같이 뛸 수 있을지…"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대표팀 주형준(동두천시청)은 이승훈(대한항공)의 출전 과정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이)승훈이 형이 다친 뒤, 아시안게임 남자 팀 추월 금메달 획득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 발로는 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주형준의 말처럼, 이승훈의 다리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10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 남자 팀 추월 경기 도중 미끄러져 넘어졌고, 본인의 스케이트 날에 오른쪽 정강이가 베였다.
상태는 심각했다. 살갗이 완전히 찢어졌고, 출혈이 심했다.
그는 인근 병원에서 8바늘을 꿰매는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걸을 순 없었다. 그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서울로 이동했다.
주변에선 아시안게임 출전을 만류했다. 출전을 강행할 경우 상처가 덧나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준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다친 뒤 이틀이 지난 12일, 휠체어에서 내려와 스케이트를 신었다.
통증을 참고 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곧바로 대한빙상경기연맹에 "아시안게임에 뛰겠다"라고 통보했다.
연맹은 며칠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지만, 그의 의지를 막진 못했다.
이승훈이 아시안게임 출전을 강행한 이유는 후배들 때문이었다.
그는 22일 팀 추월 경기 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나 혼자 미끄러져 넘어졌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라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준비과정이 수포가 되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승훈은 팀 사기에 영향을 미칠까 봐 아픈 기색을 내지 않고 팀 훈련에 참가했다.
아시안게임 결전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팀 추월 동료 김민석(평촌고)은 "일본에 도착한 뒤, (이)승훈이 형은 모든 훈련에 참여했다"라며 "팀 추월에서도 예전처럼 함께 훈련에 참가해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승훈은 금메달 2개를 획득한 22일에도 본인의 3관왕 등극보다 후배들을 챙겼다.
그는 10,000m에서 우승한 뒤 일본 선수들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소감에 관해 "포디움에 후배들과 함께 서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승훈의 투혼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이)승훈이의 성품과 정신력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이끄는 근간"이라며 "그가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투지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빙상계는 이번 대회를 통해 스포츠 역사에 남을 희생과 배려의 가치를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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