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말레이 vs '생떼' 북한, 신경전 팽팽…단교가능성도

입력 2017-02-22 14:07
수정 2017-02-22 16:02
'강경' 말레이 vs '생떼' 북한, 신경전 팽팽…단교가능성도

말레이, 수사과정 배려에도 '막무가내' 대응 北에 불만고조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22일 '김정남 암살 사건'을 계기로 수교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자국에서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원칙을 바탕으로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나서자 북한이 법규와 외교관행을 무시하며 '막무가내'식 행보를 이어가는데 불만이 고조되는 것이다.

김정남의 부검과 시신 인도 등을 놓고 강력하게 충돌한 양국은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며 대립하면서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마저 흘러나온다.





사건 초기 말레이시아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북한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말레이 정부 당국은 북한 배후설이 추측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공식적으로 북한은커녕 '김정남'이란 이름 석 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의 이런 배려에도 북한은 초반부터 부검에 반대하며 시신 인도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 과정을 통해 북한이 범행사실을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 것은 당연하다.

두 나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진 것은 강 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가 지난 17일 한밤 '생떼'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부터다.

강철 대사는 피살 사건에 북한 국적의 용의자들이 연루됐다는 말레이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말레이시아의 수사가 "기초적인 국제법과 영사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인권 침해이며 우리 시민에 대한 법적 권리의 제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적대적 세력과 결탁했다는 근거 없는 발언까지 했다.

말레이 정부 당국은 이에 강철 대사 초치와 평양 주재 말레이 대사의 본국 소환으로 북한에 강경한 메시지의 경고장을 날렸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나서 북한 태도를 비난했다.

나집 총리는 경찰 수사결과를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면서 강 대사의 발언이 "외교적으로 무례했다"고 꼬집었다.

말레이 당국의 '대북 강경 기조'는 시신 인도·신원 확인 문제에서도 잘 드러났다.

애초 북한 대사관을 통해 유족에게 김정남 시신을 넘기겠다는 말레이 당국의 방침은 북한의 반발에도 '유족 우선권'으로 바뀌었다.





이날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의 기자회견에서도 시신 인도에서 북한보다 유족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바카르 청장은 시신을 받으러 "김정남 가족이 오면 보호할 것"이라며 북한 대사관 없이도 유족과 접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남 시신의 신원을 유전자로 확인해달라며, 사망자가 김정남이 아닌 '김 철'이라는 북한을 향해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레이시아 국민의 대(對)북한 여론도 나빠지고 있다. 김정남 피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자국에서 일어난 것도 불쾌한데 배후로 유력한 북한이 적반하장 식의 행동을 보이는데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분위기다.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말레이시아 사회에선 북한과의 관계 단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80년대에 중국주재 대사를 지낸 30년 경력 말레이 전직 외교관 나두 단디스는 말레이 중문매체 성주일보(星洲日報) 기고문에서 북한과 말레이 수교관계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립국가인 북한과 외교 관계를 끊어도 말레이시아가 손해 볼 게 없다는 분석들도 쏟아진다.

양국 외교 갈등에 따라 무역과 안보 요인을 고려해 북한 무비자 입국 정책을 검토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상호 무비자 협정을 맺은 첫 국가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북한과 국교를 수립했다. 북한 핵도발 등 동북아 지역에 위기감이 커졌을 때 미국과 북한 간의 트랙2(민간채널 접촉)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kong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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