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겹쳐 새긴 역사와 기억…서효인 시집 '여수'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시인 서효인(36)이 세 번째 시집 '여수'(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시인은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2011)에서 체첸·헤르체고비나·관타나모·스탈린그라드 등을 돌며 한 세기 지구촌 폭력의 역사를 돌아본 전력이 있다. 그래서 표제가 단순히 시적 어감을 갖춘 지명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63편의 시 중 50편의 제목이 장소와 관련을 맺고 있다. 시인은 아내를 사랑함과 동시에, 처가가 있는 도시 여수를 사랑하게 된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시작되었다" ('여수' 부분)
어릴 적 살던 광주 송정리부터 출퇴근길인 자유로, 여행지 서귀포나 강화까지 세 번째 시집의 공간들은 국내로 모인다. 시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피가 솟을 때까지 바위에 이마를 찧으며, 성실하겠다고 다짐"('강화')한다. "강릉의 파도를 천천히 받아 적기 시작"('강릉')하며 시를 쓴다.
몇 편에서는 특정 공간에 공적 역사와 사적 기억을 교차시키는 시도가 눈에 띈다. 버스에 선 채 출근하는 '나'의 기억과 1968년 남한에 침투한 무장간첩 '그'의 역사는 자유로라는 공간에서 포개진다.
"나는 앉는 일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는 대통령의 목을 따버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능선을 타고 넘었다. 생각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누군가 어젯밤의 뒤숭숭한 결과를 토해놓았다. 누군가 그를 목격했지만, 그는 겨울 짐승처럼 보였다. (…) 야전 지도는 서울의 서쪽 어딘가로 그를 이끈다. 우린 늦었고 그는 목사가 되었다. 자유로는 광명과 자유를 주고, 자유로는 출근과 퇴근을 주며……" ('자유로' 부분)
독립운동가의 무덤 몇이 있는 효창공원에서 "볼을 예쁘게 차려고만 하는 아들 녀석"을 보며 "누구는 도시락을 던지고 누구는 권총을 갈겼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관중석 꼭대기에" 앉는다. ('효창공원') "추돌 사고를 낸 승용차 한 쌍의 가쁜 비상등 위로" 열차가 지나가는 한강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벗겨진 산등성이에서 포탄이 날아와"('한강철교') 폭파된 곳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새로운 역사의식'에 입각한 시 쓰기"라며 "그의 역사는 공간화된 시간들의 역사"라고 말했다.
"똑똑히 기억할수록 성공적인 죄인이 된다/ 죄인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엇이 나인가 왜 나인가/ 이유에서부터 삶은 시작한다/ 지저분한 여행이 될 것이다" 희망에서 앞선 꼼꼼한 반성을 삶의 조건으로 삼는 시인의 태도는 맨 마지막에 실린 '죄인의 사랑'에서 뒤표지로 곧장 이어진다. 시인은 뒤표지에 동료 시인이나 평론가의 추천사 대신,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반성문'을 썼다.
"나는 반성을 모르는 굴뚝이었다. 솟구치다 사라질 연기를 위해 반성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남성 시인이고 이성애자며 판정받은 장애가 없다. 돈 안 되는 시를 쓴다며 이른바 예술 한답시고 인중에 힘깨나 주고 지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사회적 오른손잡이로서 불편함과 마주해 악수하지 않았다. 내가 겪지 못한 불편은 누군가에게 불쾌와 상처, 고통과 폭력이었다. 문단이라는 거실 소파에 앉아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문학은 반성을 토대로 지속될 것이다. 수년간 발표한 시를 모으니 그때는 몰랐던 여성혐오가 지금은 보여 빼거나 고친 시가 몇 있다. (…)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134쪽. 8천원.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