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으로만 보지 말라"

입력 2017-02-22 10:40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으로만 보지 말라"

과학기술 헌법개정 토론회…헌법 127조 ①항 개정 필요성 제기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외국의 기술을 모방하던 시대에는 정부가 경제적 관점에서 과학기술활동을 촉진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과학기술 활동을 촉진하려면 경제논리를 피해야 합니다."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헌법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정부의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의 근거가 돼 온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마련됐다. 제3공화국 이후 지금까지 헌법이 과학 정책을 '국민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규정해 과학의 독자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하며, 개헌 논의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3공화국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에 초점을 두고 과학기술 정책을 펴 왔다. 주무부처가 문교부, 과학기술처, 과학기술부, 교육과학기술부, 미래창조과학부로 계속 바뀌었고 관련 중장기대책은 '과학기술개발계획', '과학기술혁신계획', '과학기술기본계획' 등으로 달라졌지만 모두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하나같이 과학 혹은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보고 있다.

노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 평가에 '경제논리'를 적용하기 때문에 이 분야가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과학기술자들은 실패 위험이 적은 연구에 매달릴 뿐 경제적 이익이 보이지 않는 연구를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반면 컴퓨터, 반도체, 태양전지, 인터넷 등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 기술들은 정작 경제논리를 따지지 않는 공공기술의 개발과정에서 얻은 결과라고 사례를 들었다.

그는 또 '녹색성장'·'창조경제'·'지진'·'조류독감'·'구제역'에 이르기까지 정부실패의 빈도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이런 경제논리를 내세울 경우 정부실패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노 교수는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헌법 제9장 '경제'에 포함된 제127조 제①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개정, 과학기술을 '국민경제의 발전' 외의 목적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박기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박사도 이 제안에 동의하며 제127조 제①항의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조화되는 사회를 추구한다'로 수정한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토론회 주최자인 신용현 의원은 "현행 헌법 아래에서 정부가 내놓은 '과학기술의 혁신'은 연구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옥죄는 '반혁신'에 지나지 않았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둔 시점에서 '자율'·'창의'·'미래'·'인재양성' 등 과학기술의 가치를 담아내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고문현 숭실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이은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이덕환 서강대 교수, 조황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권석민 미래창조과학부 과장, 김선화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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