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대표팀 경기는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부담"

입력 2017-02-22 04:20
이승엽 "대표팀 경기는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부담"

"대표팀, 평가전 결과 신경 쓸 필요 없어"



(온나<일본 오키나와현>=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어휴,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요."

한국 야구 대표팀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시원한 홈런포로 돌파구를 만든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도 태극마크의 무게에 힘겨워했다.

20일 일본 오키나와현 온나손 아카마 구장에서 만난 이승엽은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라고 말했다. "어휴"라는 감탄사까지 내뱉을 정도였다.

많은 이가 화려한 순간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화려한 축포를 쏘기 전까지, 이승엽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무릎이 아팠고,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야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부진했는지 아시지 않나"라고 고백했다.

결과는 짜릿했다.

이승엽은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3·4위전에서 8회 2타점 결승 2루타를 쳤고, 2006년 WBC에서는 일본, 미국을 상대로 홈런을 치는 등 5개의 아치로 홈런왕에 올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예선 내내 부진하다,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8회 역전 결승 투런 아치를 그렸다. 경기 뒤 이승엽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풀어내는 듯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은 "예선리그에서 너무 부진했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삼진-병살타-삼진으로 세 타석을 보냈다"며 "정말 미칠 것 같았는데 절박한 순간에 홈런이 나왔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부진을 씻는 결정적인 홈런. 그러나 이승엽은 부담감을 여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이승엽은 "나는 주위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며 "지금도 힘들지만, 만약 그런 고비에서 홈런이나 2루타를 치지 못했다면 평생 엄청난 짐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 부담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타석에서 이승엽은 강했다.

그는 "더그아웃에 앉아 있을 때는 힘들다가도 막상 타석에 서면 '3타수 무안타나 4타수 무안타나 똑같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2013년 WBC를 마지막으로 이승엽은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그는 2017년 WBC에 나서는 후배들을 응원한다.

이승엽은 "대표팀이 1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평가전에서 0-4로 졌다. 속상한 후배들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평가전 패배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대회에 들어서면 집중력이 달라진다.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에도 "야구는 전력만으로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그랬다면 우리가 2006년 WBC에서 미국에 졌을 것"이라며 "주눅 들지 말라"고 했다.

태극마크가 안기는 부담감을 알기에 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승엽은 "지금은 대표팀을 향한 박수, 격려가 필요한 때다. 팬들께서도 기다려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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