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심포니가 들려준 '천상의 삶'…평화롭지만 지루해

입력 2017-02-21 14:05
런던심포니가 들려준 '천상의 삶'…평화롭지만 지루해

다니엘 하딩이 이끈 런던심포니 내한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의 말미에 이르자 잉글리시혼과 하프가 마치 천국의 길을 걷듯 유유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하프와 더블베이스가 마지막 음을 연주하고 더이상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귓가엔 여전히 하프의 발걸음 소리가 맴돌았다. 그것은 마치 무한히 펼쳐진 천국의 길처럼 끝없이 계속됐다.

지난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다니엘 하딩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LSO)는 '천상의 삶'을 노래한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을 정교한 앙상블과 정화된 톤으로 소화해내며 천국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구현해냈다. 썰매 방울 소리로 시작하는 1악장의 동화적인 음향으로 시작해 명상적인 아름다움이 표현된 3악장의 서정성, 끝없는 발걸음처럼 이어지는 4악장의 특별한 엔딩에 이르기까지 LSO 연주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모든 음은 잘 다듬어져 있었고 오케스트라 단원 개개인의 탁월한 기교와 합주에 이르기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특히 3악장에서 여러 음을 하나로 이어 매끄럽게 연주하는 현악 주자들의 탁월한 기교와 그 벨벳 같은 음향은 이번 공연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과연 하딩과 LSO가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을 통해 그려낸 천상의 삶의 모습이 과연 말러의 음악다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웠다. 말러의 음악에선 항상 극단적인 대립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을 들으면 그저 편안하지만은 않다. 아름다움이 있으면 추함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의 고통이 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더 빛나고 사랑은 더 절실하다.

이는 말러의 교향곡 제4번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러의 교향곡 제4번은 전체 4악장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마지막 악장은 천상의 삶을 노래한 가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말러가 애초에 이 교향곡을 구상할 당시에는 이 교향곡의 구성이 약간 달랐다. 그는 이 교향곡을 모두 5악장으로 구상했고 그중 제2악장에는 '지상의 삶'이란 부제가 붙어있었다. 말러는 애초에 마지막 악장의 '천상의 삶'에 이르기 전에 먼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상의 삶'을 먼저 선보이려 했던 것이다.

지상의 고통과 천상의 행복 간 대비. 이런 특징은 말러의 교향곡 4번의 최종본에서도 감지된다. 완성된 말러의 교향곡 제4번에선 비록 '지상의 삶' 악장은 빠졌지만, 1악장 전개부 클라이맥스에 나타나는 장송행진곡의 나팔 소리나 3악장에서 탄식하는 듯 연주되는 오보에 소리 등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측면은 계속해서 지상의 삶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딩과 LSO의 연주는 지나치게 평화롭고 정제돼 있었다. 그래서 이 교향곡을 듣는 동안 고통이 없는 천상의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1악장의 장송 나팔 소리는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으며, 2악장에 등장하는 저승사자의 바이올린도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또 1악장에서 말러가 일부러 거친 소리를 의도하고 쓴 듯한 4대의 플루트 주제에서도 LSO의 플루트 주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음향은 기교적인 면에선 매우 감탄스러웠으나 오히려 이 작품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또한 천상의 순수한 삶을 노래한 제4악장에서 소프라노 말린 크리스텐손의 음색은 다소 무거워 천상의 순수한 면을 부각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 듯했다.

공연 전반부에 LSO와 터니지의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 호칸 하르덴베리에르의 무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청중이 터니지의 트럼펫 협주곡을 처음 접했으리라 생각되나 많은 관객이 이 곡에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하르덴베리에르의 트럼펫 음색은 트럼펫 특유의 당당하고 찬란한 개성뿐 아니라 달콤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운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어 트럼펫이란 악기가 그처럼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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