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후계 탈락이유는 '중국식 개혁 따르자' 간언 때문"

입력 2017-02-21 09:59
"김정남 후계 탈락이유는 '중국식 개혁 따르자' 간언 때문"

김정일과 의견 충돌…"1996년부터 권력중심서 밀려나"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김정남이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이유가 일본 불법입국 문제 때문이 아니라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자는 간언으로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周刊) 최신호는 21일 북한의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을 따라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후계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정남이 2001년 5월 가족과 함께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에 위조여권을 들고 입국하려다 구속되면서 김정일의 진노를 샀다고 보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통상적 관측과는 다르다.

김씨 일가의 소식에 정통한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남이 1990년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북한에 돌아와 전국을 시찰하고 북한경제의 고질병을 깨달은 뒤 김정일에게 과감한 경제개혁을 건의했다고 전했다.

이 때부터 김정일은 김정남을 경계했고 김정남은 점차 권력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남이 1996년 8월 북한 내에서 부분적으로 모색되던 시장경제 관련 집회에 참석, 중국식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출신의 탈북시인 장진성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집회에 거구의 한 젊은 남자가 등장해 자신감 있는 어조로 "아버지가 내게 전체 나라 경제를 조금 재정비해봐라'고 했다.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중국식 개혁개방을 빼고는 방법이 없다. 먼저 기업을 세우고 그 자회사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발전시키면 자본주의로 변하지 않겠느냐"고 연설했다.

장진성은 "그 사람이 바로 김정남이었다"면서 "연설을 듣고 나선 내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줄 알았다"고 전했다.

이후 김정남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집회가 끝난 뒤 1주일도 안 돼 평양 중심 대동강 구역의 한 아파트 부근에 '광명성 총공사'라는 간판이 세워지고 건축이 시작됐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 같은 김정남 언행의 '위험성'을 감지했다. 북한 체제의 사상적 뿌리가 흔들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김정남에게 경제 분야 업무를 떠나 '정치를 더 공부하라'고 한 뒤 김정남의 측근도 체포하고 관련 활동을 제한시켰다. 이후 김정남은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정남은 이에 매우 실망하고 의기 소침해졌으며 이 때부터 이주를 결심한 뒤 해외로 떠돌게 됐다.

이와 관련, 김정남과 인터뷰, 이메일 접촉을 해왔던 고미 요지(五味洋治)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최근 "1990년대 김정일과 북한경제 시설을 시찰하던 중 의견차가 생긴 뒤 후계 구도에서 멀어졌다는 얘기를 (김정남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김정남이 유학 시절 유럽에서 보고 배운 방식과 북한의 경제개발 실제가 달라 김정일과 의견충돌이 생긴 것을 계기로 최종적으로 북한을 떠나 생활하게 됐다는 것이 요지 위원의 전언이었다.

여기에 김정일의 마음이 김정남의 친모인 첫째부인 성혜림에게서 멀어지고 일본 귀국자 출신의 셋째부인 고영희에게 빠지면서 고영희 슬하의 정은, 정철 두 아들을 총애한 것도 한 배경이 됐다고 아주주간은 전했다. 1996년은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이 서방으로 망명한 시기다.

아주주간은 또 김정은이 집권한 뒤 친중국 반대파 세력이 김정남을 중심으로 군사정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두차례나 해외 거주 중인 김정남을 암살하려 했으나 중국의 보호로 목숨을 보존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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