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남성 주도·독극물제조→외국여성 실행'…김정남 독살극 윤곽
'北공작원들이 외국여성들 포섭·실행한' 시나리오
(쿠알라룸푸르·서울=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김수진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암살 사건에서 약학을 전공한 북한 국적의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미궁에 빠져 있던 이번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권 소지 여성 2명만 체포된 상황에서, 불확실했던 북한 배후설이 리정철 검거로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19일 경찰 수사 상황을 인용한 말레이시아 언론을 종합하면 총 6명으로 지목된 용의자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이번 암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리정철(46)과 도주한 나머지 남성 3명을 북한 국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 공작원들이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린 뒤 외국 여성 2명을 사주해 작전을 실행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 北 용의자들, 최소 1년 전 기획…신종 독극물 제조 가능성
지난 17일(현지시간) 밤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숨어있다 붙잡힌 리정철은 도주한 나머지 남성 용의자 3명과 함께 이번 암살을 기획한 주동자로 지목된다.
리정철에게서는 북한 국적으로 표기된 신분증이 나왔고, 나머지 3명의 국적도 모두 북한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들은 이들이 1년 동안 김정남의 동선을 파악했으며 범행 당시에도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는데, 리정철이 체포 당시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은 실제로 1년 기한의 노동허가를 갱신한 것이었다.
리정철이 다른 북한 노동자와 달리 아내, 자녀들과 함께 현지에 거주해 온 것도 수상한 대목이다. 일반적인 '외화벌이' 북한 노동자는 도주 우려 때문에 가족을 동반하는 게 금지돼 있다.
또한 김정남이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리정철이 북한의 대학에서 과학·약학 분야를 전공한 약학 전문가라는 현지 보도는 주동자설을 뒷받침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신분을 감추고 생활해오던 리정철이 나머지 용의자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그가 범행 직후 도주한 나머지 3명과 달리 현지 아파트에 은신한 만큼 '진정한 막후 수뇌'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진짜 몸통'이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동안 리정철은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신종 독극물을 만드는 등 암살 계획에 적극 관여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 암살에 이용당한 여성 용의자들?…수상한 행적 아직 풀리지 않아
암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척될수록 가장 먼저 체포된 두 여성 용의자는 주범에 포섭된 깃털로 비치고 있다.
리정철 등이 범행 1∼3개월 전쯤 돈과 방송 촬영 등을 빌미로 암살 계획을 숨긴 채 두 여성을 꾀었다는 것이다.
두 용의자와 가족들도 이 같은 방향으로 진술하고 있으며, 내용도 꽤 구체적이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암살 용의자 시티 아이샤(25) 가족은 일본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샤가 사건 전후 "일본 TV 방송국에 고용돼 말레이시아에서 장난치는 몰래카메라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이샤는 가족들에게 약 1개월 전부터 장난 몰래카메라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내 손에 고추를 바르고 상대의 뺨을 누르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아이샤는 체포 뒤 경찰에 "100달러를 받고 나쁜 장난을 치는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9) 역시 경찰 조사에서 장난인 줄 알았으며, 상대 남성이 사망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보인 수상한 행적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가담한 것으로만 보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두 사람은 범행 직후 화장실로 뛰어가 손을 씻고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흐엉은 경찰에 붙잡히기 전 호텔을 세 차례나 옮겨 다녔다.
흐엉이 사건 하루 전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몸에 거액의 현금을 지니고 있던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또한 아이샤는 여권과 거주지에 이름과 생년월일의 다른 신분이 각각 등록돼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두 여성 용의자를 상대로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하는 한편, 나머지 용의자 3명의 도주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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