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한달] 무역질서 허물고, 통화전쟁 선포하고
'아메리카 퍼스트' 보호무역 고수…나프타·TPP 무역질서 휘청
중·일·독 향해 환율전쟁 포문, 다음달 G20 재무장관 회의 분수령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나의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수십 년간 우리는 미국 산업을 희생한 대가로 외국 산업의 배를 불렸다. 이 순간부터 미국이 우선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취임식. 전 세계는 보호무역주의와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는 트럼프 대통령을 똑똑히 지켜봤다.
불과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선언했고, 다음 날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천명했다.
개방과 자유무역을 외치던 미국은 일순간 사라졌고, 전 세계는 새롭게 몰아닥친 '트럼프 파고'에 출렁거렸다.
◇ 무역질서 허물고, 통상장벽 쌓고
트럼프 대통령의 첫 통상 타깃은 인접국 캐나다와 멕시코였다. 그는 미국을 포함해 세 나라 간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를 재협상하고, 만족스럽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했다. 대미 수출 비중이 75에 달하는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또한 최소 20%, 최대 35%까지 국경세 부과 방침이 거론되자 양국의 반발은 더욱 고조됐다.
캐나다는 국경세 부과가 실행되면 상응하는 보복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멕시코는 나프타 재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지난 13일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에 집중하겠다"고 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예상대로 나프타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은 상호 간에 호혜적이어야 한다. 무역 조건을 약간 고쳐야 한다"며 나프타 재협상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미 35개 주의 최대 수출시장이며, 하루 20억 달러의 교역을 통해 (서로) 이익을 내고 있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나프타에 더해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문제까지 떠안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1월 31일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며 발톱을 세웠다.
그러나 니에토 대통령은 "양국에 도움이 되는 협정에 도달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재차 밝힌다"고 말하는 등 힘을 앞세운 강자에 맞닥뜨린 약자의 엄중한 현실을 체감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은 북미 지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가 탈퇴를 선언한 TPP는 일본과 싱가포르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최대 경제통합체다.
특히 TPP는 단순한 다자무역협정을 넘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신(新) 외교·안보 틀'로서 미국이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아·태 지역의 무역질서뿐 아니라 안보 질서에도 큰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문제라면 동맹도 '아메리카 퍼스트'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도 확인시켰다.
그는 지난 1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양국 간 공조를 분명히 했다. 또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문제는 미·일 안보조약 적용대상이라며 일본의 관할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양국 간 무역 문제에 대해선 "양국 경제 모두에 혜택을 주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상호적인 무역관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앞으로는 '공정한 무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TPP 대신 일본과 양자 무역 협상 테이블로 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동성명에는 양자 무역협정 추진 내용이 담겼고, 이를 위한 경제회담을 만들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 내 일자리 70만 개 창출' 등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고,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겨울 백악관'인 고급리조트 마라라고에 머물며 골프 라운딩까지 곁들였다. 그가 쏟은 정성과 비교하면 귀국 보따리는 무겁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환율전쟁 선전포고, 다음 달 G20 회의가 분수령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과 더불어 환율전쟁의 포문도 열었다. 중국은 물론 일본과 독일을 상대로도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칼날을 세웠다.
특히 중국의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는 그에겐 후보 시절부터 눈엣가시였다. 그는 취임 후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압박했고, 취임 100일 안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 1월 미 상무부는 중국산 타이어에 대해 40% 이상의 상계관세율을 적용했다.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2개국(G20) 국가인 중국을 의도적으로 홀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취임 축전에 답하지 않다가 취임 20일 만에 첫 메시지를 보낸 게 대표적이다.
그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환율 문제에 직공을 가했다. 지난 10일 미·일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그는 중국의 '환율조작'을 거론하며 "내가 그동안 계속 불평을 해 왔는데, 우리는 곧 공평한 운동장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등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환율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미국발(發) 환율전쟁의 전선은 일본과 독일로까지 넓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미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또 그 직전, 초강성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절하를 통해 미국을 착취한다며 사실상 독일을 향해 선전포고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방위적 환율전쟁 경고는 1980년대 후반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의 '플라자 합의'를 떠오르게 한다.
1985년 미국은 달러 강세 기조가 지속하자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조치를 요구했다.
다음 달 17~18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환율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어 4월에는 미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는 이 보고서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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