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한달] '빠르고 강한' 트럼프 폭풍에 움츠린 한국 경제

입력 2017-02-18 09:15
수정 2017-02-18 09:19
[트럼프 정부 한달] '빠르고 강한' 트럼프 폭풍에 움츠린 한국 경제

트럼프 발언에 춤추는 환율…환율조작국 지정 우려에 '4월 위기설'까지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자동차·철강업계 긴장…과도한 우려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고은지 민경락 기자 =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우선주의 공세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돼 한국 경제를 옥죄는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경기부양 기대감에 따른 달러 강세를 억누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계속되면서 환율 변동성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까지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대되면서 위기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에너지 수입 확대 등 대미 경상수지 폭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국내 산업계 역시 미국 내 생산공장 설립을 검토하는 등 통상 갈등 우려를 선제로 차단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 커지는 불확실성…위기설에 갇힌 한국 경제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말과 트위터 한 마디 한 마디에 글로벌 경제지표는 요동을 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극단을 오가며 널을 뛰는 환율시장이 대표적이다.

트럼프의 경기부양 정책으로 상승세를 보이는 원/달러 환율은 달러 강세를 우려하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급락하며 불안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일갈했다.

이 발언은 외환시장에 즉시 영향을 줬고 전날 10.8원 급등한 원/달러 환율은 12.1원 떨어진 1,150.0원에 개장했다. 급등세로 개장한 환율이 단 하루 만에 급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미국이 오는 4월 발표하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으로 제시한 3가지 기준(대미 무역수지 흑자, 경상수지 흑자, 환율시장 개입 여부)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며, 3개 중 2개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3가지 기준 중 2가지만 해당하는 만큼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무역수지 적자 해소에 목을 맨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기준을 들고나와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셰일가스 등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기로 한 데 이어 제조업 분야 수입도 촉진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미 경상수지 축소 노력을 부각해 혹시 모를 가능성이라도 선제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보호무역주의 성향 역시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으로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전 세계 교역량의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 수출 의존적인 한국 경제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가 올해로 5주년을 맞은 한미FTA에 대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제 막 회복 기미를 보이는 수출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타격을 받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내수·투자 부진에 더해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진 상황에서 경기를 살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희망인 수출마저 흔들리면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 지정과 대우조선해양 디폴트 우려에 따른 4월 위기설, 그리스의 국가부채 상환만기를 근거로 한 7월 위기설에 이어 10년 주기의 2017년 위기설까지 온갖 위기설이 난무하는 것은 이런 불안감과 무관치 않다.



◇ '트럼프 리스크' 살길 모색하는 산업계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대(對)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우리 산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정부에서도 무역장벽이 꾸준히 높아졌는데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인해 더욱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종별로 보면 자동차와 철강, 전자업계가 가장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멕시코 가전제품 생산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나프타 재협상 결과에 따라 자칫 '관세 폭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멕시코 북동부 누에보레온주(州) 주도인 몬테레이에 자리 잡은 기아차[000270] 공장도 마찬가지다.

기아차는 현지 생산량의 60%를 북미로, 20%는 중남미로 수출하고, 나머지 20%는 멕시코 시장에서 판매할 계획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관세를 매길 경우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는 트럼프 정부의 수입규제 움직임에 주시한다.

이미 미국의 수입규제가 상당 부분 진행된 데다가 업계 자체적으로도 어느 정도 대비했다고 보고 있지만, 저가 수입산에 날을 세운 미국이 주요 타깃인 중국과 자칫 '무역전쟁'이라고 벌이게 된다면 우리에까지 불똥이 튀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장벽을 피해 값싼 중국산 제품이 동남아 같은 우리나라의 수출시장이나 국내로 밀려들게 되면 국내 철강업계에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발 빠르게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전 대응에 나선 기업도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앨라배마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포함해 몇 개 주와 냉장고 및 세탁기 등 가전제품 생산공장 건립을 놓고 교섭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도 있다는 기사가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라고 썼다.

현대자동차[005380]는 지난달 17일 5년간 31억달러(약 3조5천6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밝혔다.

LG전자도 올해 상반기 중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정책에 대한 국내 정부와 산업계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이 미국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닌 데다 설사 환율조작국 지정, 한미FTA 재협상 등이 현실화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만큼 과도한 불안감은 오히려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18일 "미국이 우리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작지만 지정한다고 해도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 현실적인 불이익은 크지 않다"며 "한미FTA는 상호 이익인 만큼 잘 살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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