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1세대 원로 홍용명 "대단한 후배들…계속 노력해주세요"

입력 2017-02-16 18:30
피겨 1세대 원로 홍용명 "대단한 후배들…계속 노력해주세요"

1948년 제1회 전국여자피겨선수권 우승…"후배들에게 감사"

(강릉=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피겨 선수 보살피는 부모님들이 재정적으로 덜 힘들게 모두 재벌이 됐으면 좋겠네요."

한국 피겨스케이팅 1세대 원로인 홍용명(85) 여사는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나선 손자·손녀뻘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매서운 겨울 칼바람과 맞서며 얼어붙은 한강에서 훈련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국내 피겨 환경은 '상전벽해' 수준이다.

홍용명 여사는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7 4대륙 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요즘 후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라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1940~50년대 스케이트화는 물론 훈련 장소도 구하기도 어려웠던 열악한 상황을 견뎌낸 홍 여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경기가 치러지는 강릉아이스아레나를 보며 감격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홍용명 여사는 1948년 한국에서 처음 열린 피겨 대회인 '전국 여자 피겨 선수권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한국 최초 여자 싱글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다.

1932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홍 여사는 일제 강점기 때 부모님을 따라 중국 베이징으로 이사를 하였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피겨를 배웠다.

1945년 광복이 되고 서울로 돌아온 홍 여사는 이화여자중학교에 입학해 피겨부 창단 멤버가 됐다.

홍 여사는 1948년 한국에서 처음 열린 피겨 대회인 '전국 여자 피겨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최초의 여자싱글 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피겨에 대한 인식은 열악했다.

한국 피겨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사'에 따르면 1950년대 열린 경기에서는 페어 시범 경기를 준비하던 남녀 선수가 풍기문란으로 연행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특히 홍 여사는 늘씬한 키에 돋보이는 외모로 1940~50년대 초 창경원이나 덕수궁에 연습하러 나타나면 남학생들이 줄을 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홍 여사는 "내가 피겨 선수를 할 때는 1년에 한 두 달밖에 훈련할 수 없었다"라며 "한강이 얼면 훈련했다. 한강이 녹기 시작하면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서 춘천, 화천에서 훈련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미소를 지은 홍 여사는 "피겨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저 좋아서 시작했다. 그때는 기술 교본도 제대로 없었다. 그런 힘든 시절이 지나고 나니 김연아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한국에서 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여사는 이날 치러진 개막식에도 참가해 후배들을 격려했다.

그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홍 여사는 "후배들이 계속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선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라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이스댄스에서도 후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 피겨가 많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선수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들이 제일 고생"이라며 "피겨 선수를 키우는 모든 부모에게 감사드린다. 부모님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도록 모두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덕담을 했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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