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에 빠진 중국인 살인범, 이해 못할 범죄의 '시작과 끝'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중국인 살인범 천궈루이(51)씨는 16일 1심 재판에서 25년형을 선고받자 '억!' 소리를 내며 쓰러진 뒤 대기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지난 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통역을 통한 결심공판 최후변론에서 "어떤 죄도 달게 받겠다. 모두 감사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던 그였다.
천씨는 당시 검찰로부터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뒤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 변호사에게 '땡큐'(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주일 뒤 열린 선고공판.
재판 30분 전 호송차에서 내린 천씨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재판장이 25년형을 선고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억!' 소리를 내며 쓰러진 뒤 피고인 대기실로 옮겨진 그는 깨어난 후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교도관들은 휠체어를 준비했다가 나중에 밧줄과 들것을 준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대기실 안에서 재판 결과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재판을 통해 드러난 천씨의 범행 경위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했다.
천씨는 지난 2010년께 중국 정부가 자신의 머릿속에 칩을 심어놓아 자신을 조종하며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등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8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 여겼다고 진술했다.
결국, 천씨는 외국에 나가 비교적 범행이 쉬운 여성을 상대로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할 계획을 세웠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범죄를 저지를 계획을 세웠지만, 비자발급이 여의치 않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를 목적지로 선택했다.
지난해 9월 13일 중국 여행사를 통해 제주공항에 입국한 뒤에도 여전히 경찰이나 출입국관리소 등 누군가 조정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시가지를 배회하며 범행 도구를 구입한 그는 수차례 호텔을 드나들다가 비교적 접촉이 쉬운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 했으나 돈도 시간도 부족해 계획을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가와 골목 등에서도 범행대상을 찾지 못한 그는 '교회나 성당에서 범행해도 예수님, 하나님이 용서해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하기에 이른다.
이틀간 여러 차례 교회와 성당을 돌아다닌 끝에 같은 달 17일 오전 8시 47분께 제주시 모 성당에서 기도 중인 김모(61·여)씨를 찬송가 책 사이에 숨겨 가지고 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피고인을 감정한 법무부 치료감호소 소속 의사는 "피고인은 특정 주제나 현상에 대해 자신만의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외부 상황을 자신의 인상에 근거해 지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망상적 사고가 신념 수준으로 확고하게 체계화·공고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망상장애 환자로서 피해망상, 관계망상, 불안정한 정서, 충동조절 능력의 저하, 판단력의 저하, 병식 결여 등의 정신 증세를 보이며 이 사건 범행 당시에도 같은 증세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취지의 소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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