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아이스하키 산증인 이규선 "얼마나 더 잘할지 기대돼요"
17년째 국가대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이왕이면 금메달"
(삿포로=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맏언니' 이규선(33)은 지난해 8월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 2'를 보고 먹먹했다고 했다.
영화는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장면에서도 이규선은 웃을 수 없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열여섯 살이던 2000년 대표팀에 처음 승선했다. 올해로 벌써 대표팀 17년 차다. 대표팀 막내와는 무려 17살 차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이규선은 꿋꿋하게 외길을 걸었다.
아이스하키계에서는 이런 이규선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그를 지난 15일 일본 삿포로에 있는 대표팀 숙소 인근에서 만났다.
"원동력이요? 정신없이 운동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하키가 재미있으니깐요. 팀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기대감도 생겼고요."
다른 종목이야 프로팀이나 실업팀에서 안정적으로 운동할 수 있지만, 여자 아이스하키는 대표팀이 유일한 팀이다.
이규선은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어야 했다. 어머니의 반대와 주변의 걱정스러운 시선에도 그는 스틱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좋아서 몰두하는 사이 대표팀의 경쟁력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한국은 2013년 4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 2그룹 B(5부리그)에서 5전 전승으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4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미국 미네소타대 출신의 새러 머레이 감독이 2014년 9월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에는 미네소타 전지훈련의 길도 열렸다.
한국은 미네소타 지역 연고의 여자 프로리그 팀과 겨루면서 선진 아이스하키에 눈을 떴다.
가속 페달을 밟은 한국은 지난해 8월에는 비록 친선경기였지만 사상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을 꺾는 개가를 올렸다.
지난 6일 세계 랭킹 8위인 독일과 평가전에서는 2-4로 패했지만 좋은 경기 내용을 보이며 가파른 성장세를 확인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세계 랭킹은 2014년 24위에서 올해 23위로 한 계단 올라서는 데 그쳤지만, 질적인 성장 폭은 훨씬 컸다.
이규선은 "이제는 세계적인 강팀과 경기해도 뒤처진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며 "우리가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오는 19일 개막하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메달을 노린다.
14년 전 아오모리에서, 4경기 80골을 내주고 1골을 넣었던 한국이 이제는 메달권을 넘보는 것이다.
이규선은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는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메달을 땄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꼭 1승을 따내고 싶어요. 아무리 못해도 일본은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물론 우리가 지금 일본과 비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은 1년 동안 바싹 올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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