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김정남 피살' 수사 주시…北소행시 '공세고삐' 강화
당국자 "철저한 진상규명"…北 시신인도 요구 거부감 표시 해석
진상규명 위한 물밑 협조 나선듯…윤병세 "결과 나오면 대응"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정부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대북압박을 위한 대대적 외교 공세를 예고했다.
우리 정부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가정보원이 밝힌 대로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였다는 점, 독살이라는 대담하고 범상치 않은 범행 수법에 비춰 북한의 소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자는 16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 정부로서는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수사하고 있지만 현재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많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김정남 피살이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김정은 정권의 잔학성과 반인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혀 정부가 사실상 북한의 소행 가능성에 적지 않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레이시아 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철저한 진상규명' 언급은 특히 북한이 말레이시아 측에 김정남의 시신 인도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정확한 사인과 책임소재를 밝히기 전에는 김정남의 시신을 북측에 인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진상규명을 위해 말레이시아 측에 북한의 암살 수법 등 관련 정보 제공하고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당국자는 "말레이시아 측과 외교적 소통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의 진상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말레이시아 당국과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 NHK 방송은 이날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 한국 정부가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피살자 지문 조회를 요청받고 확인한 결과 김정남의 것과 일치했다면서 한국 측은 이전에 김정남의 지문을 채취해 놓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보당국이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정남의 지문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고, 이번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말레이시아 측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 신원 확인에 도움을 줬다는 취지다.
국내 일부 언론은 우리 정부가 김정남의 시신을 검안했다고 보도했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확인 불가"라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거부했다.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정부는 핵·미사일 문제와 함께 테러·인권 측면에서 북한을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시키기 위한 공세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당국자는 "북한 정권의 소행으로 확인되면 인권적 측면 등에서 국제사회와 여러 가지 형태로 움직임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와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전날 독일 출국에 앞서 "말레이시아의 조사 결과가 종합적으로 나오면 분석이 따를 것이고, 앞으로 예상되는 다양한 측면을 정부에서 심도 있게 분석하고 대응할 것 같다"면서 후속 대응을 예고했다.
윤 장관은 독일에 도착해서도 한국 기자들에게 "앞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역학 구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에 (이번 회의에서 각국 외교장관들의) 관심이 있을 것 같다"며 "북한 정권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으로서 공론화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한다"면서 독일 외교무대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 정권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정확히 인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남 피살이 북한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 등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더욱 거세지면서 북한의 고립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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