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와 강치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최초 희생물"

입력 2017-02-16 17:06
"독도와 강치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 최초 희생물"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독도는 단 몇 개의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예의 닻이다. 일본이 독도탈취를 꾀하는 것은 한국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16일 오후 부산시 동구 초량동 부산YWCA 강당에서 열린 '일본의 독도 불법편입과 독도 강치(바다사자)의 멸종' 세미나에서 한대송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장은 "60여년 전 변영태 전 외무장관이 발표한 이런 성명은 독도 문제에 관해 가장 함축적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라고 밝혔다.

이 세미나는 해양수산개발원이 갈수록 노골화하는 영유권 주장에 대응해 일본의 독도 불법편입 역사, 자원수탈로 인한 생물 멸종 등 피해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마련했다.

한 센터장은 '1905년 일본의 독도 불법편입 과정'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독도는 일본의 한국 주권 침탈과정의 첫 번째 희생물이었다"며 "일본의 독도 편입시도는 독도에 대해 확립된 우리의 영토주권을 침해한 불법 행위가 명백하다"고 규정했다.



그는 1877년 3월 29일 일본의 최고국가통할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17세기 에도막부와 조선정부간 교섭(울릉도쟁계) 결과에 따라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내무성에 지시한 사실에 비춰 일본도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일본은 1905년 각의결정으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는 조치를 취했고 시마네현으로 하여금 독도를 다케시마로 칭하고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고시하도록 했다.

이러한 독도 불법편입은 만주와 한반도를 둘러싼 이권을 놓고 대립하던 러시아와의 해전을 대비해 망루를 건설하고 전신망을 구축할 목적으로 이뤄졌다.

일본은 독도에 서식하는 강치잡이에 혈안이 된 수산업자 나카이 요자부로의 요청을 근거로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며 자기 영토에 편입했다.

하지만 이는 국제법상 무효라고 한 센터장은 지적했다.

일본은 1905년 당시 독도가 무주지여서 자국 어민이 이 섬에서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법에 따라 편입했다는 이른 바 '무주지 선점론'을 펴고 있지만 독도는 무주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해 왔으며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통해 이를 재확인한 바 있다.

일본의 무주지 선점론은 자신들이 17세기부터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해온 고유 영토라는 주장과 모순된다고 한 센터장은 강조했다.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독점하고 싶어한 나카이 요자부로는 독도가 영토로 편입되자 3명의 다른 업자와 함께 합자회사를 세워 마구잡이 포획에 나섰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연평균 1천300마리의 강치를 잡아갔다.



이러한 남획 때문에 독도의 강치는 점점 사라져 결국 멸종에 이르렀다.

일본은 울릉도의 규목, 오징어, 전복, 김 등도 본격적으로 채취하는 등 자원을 강탈해갔다고 한 센터장은 설명했다.

그는 변영태 전 외무장관의 성명을 인용해 "독도는 한국 침략으로 인한 최초의 희생물이며 해방과 함께 다시 우리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고 결론 내렸다.

한 센터장에 이어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이 '사진으로 보는 독도 강치 멸종사'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주 원장은 지난해 말 출간한 자신의 저서 '독도 강치 멸종사'를 토대로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잡이를 독점한 이후 마구잡이로 포획해 멸종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한 사진 자료를 토대로 설명했다.

lyh950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