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18세기 학자의 명저…'발해고'와 '열하기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바탕을 둔 실학은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재위 1776∼1800) 때 융성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실학자인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홍대용은 모두 정조 때 활동했다. 당시 이들과 교류했던 학자인 유득공(1748∼1807)과 서호수(1736∼1799)가 쓴 '발해고'(渤海考)와 '열하기유'(熱河紀遊, 일명 연행기<燕行記>)를 우리글로 옮긴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펴낸 '발해고, 우리가 버린 제국의 역사'는 서얼 출신의 북학파 학자인 유득공이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해 통일신라와 발해가 남북국시대를 이뤘다는 사실을 밝혀낸 '발해고'의 번역본이다.
이번에 출간된 '발해고'는 2000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된 필사본이 저본이다. 유득공의 문집인 '영재서종'(영<삼수변에令>齋書種)에서 나온 새로운 '발해고'는 기존에 알려진 '발해고'보다 분량이 많고 구성도 다르다.
새로운 '발해고'는 4권으로 구성돼 4권본으로 불린다. 이는 유득공이 1784년 1권짜리 '발해고'를 내고 시간이 흐른 뒤 내용을 덧붙이고 논평을 추가한 일종의 증보판이다. 글자 수는 38% 더 많다.
'발해고' 4권본은 군주고, 신하고, 지리고, 직관고, 예문고 등 5개 고(考)로 나뉜다. 1권짜리 '발해고'와 비교하면 지리고가 대폭 보강됐다.
번역 작업을 맡은 김종성 씨는 "발해고 4권본이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유득공은 미완성의 원고라고 생각해 책명을 '발해사' 대신 '발해고'라고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권본에는 신라와 발해를 남북국 관계로 파악한 서문이 있지만, 4권본에는 서문이 없다"며 "그렇다고 해서 유득공이 남북국 관념을 철회했거나 보류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16쪽. 1만3천원.
출판사 아카넷이 출간한 '열하기유'는 서호수가 '열하'(熱河), 오늘날의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를 다녀온 뒤 쓴 기행문이다.
조선시대 중국 사절단이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는 열하를 방문한 것은 1780년과 1790년 두 번뿐이었다. 그중 연암 박지원은 1780년에 열하를 갔고, 서호수는 1790년 유득공과 함께 열하 땅을 밟았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청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살피고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 것과 달리, 서호수는 '열하기유'에서 사실을 전달하는 데 힘썼다. 특히 천문, 역산(曆算), 음악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특징이다.
'열하기유'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내용은 중국의 연극이다. 서호수는 새벽에 시작해 7∼8시간씩 이어진 청나라 궁중 연극을 관람한 뒤 날카로운 시선으로 쓴 감상평을 남겼다.
서호수는 정승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육조 판서를 여러 번 지낸 인물이다. 그의 아들인 서유구는 백과사전인 '임원십육지'를 썼다.
역자인 이창숙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해제에서 "열하기유는 중국 각 지역의 연혁과 당시 수비 병력 등 현황을 매우 세밀하게 기록해 일종의 정탐 보고서로도 읽힌다"고 평가했다. 432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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