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김정남과 생모 성혜림…이국땅서 죽음 맞은 굴곡진 인생사

입력 2017-02-16 06:00
수정 2017-02-16 08:28
피살 김정남과 생모 성혜림…이국땅서 죽음 맞은 굴곡진 인생사

모스크바 성씨 묘비엔 '묘주 김정남' 글씨 선명…"아들 사망으로 성씨묘 사라질 수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이 이국땅 말레이시아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으면서 역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쓸쓸히 반평생을 보내다 병사한 그의 어머니 성혜림의 삶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65세의 나이로 숨진 성씨의 무덤은 지금도 모스크바 서쪽 외곽에 있는 '트로예쿠롭스코예' 국립묘지에 남아있다. 이 묘지는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노보데비치 국립묘지의 분지(分地) 격으로 옛 소련과 러시아의 고위 정치인, 고급 장성, 유명 작가와 배우 등이 묻힌 곳이다.

성씨가 사망한 뒤 북한 당국이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할 수 없으니 북한의 국모(國母) 수준으로 안치해 달라”고 러시아 측에 요청해 이곳에 묘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가 15일(현지시간) 찾은 성씨의 묘 봉분에는 흰 눈이 두껍게 쌓여 있고 묘비 앞에는 누군가가 남겨 놓은 흰색 국화가 눈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씨는 차가운 고요 속에 침묵하고 있었다.

검은색 대리석 묘비에는 한글로 ‘성혜림의 묘’라는 비명과 생존 시기(1937.1.24-2002.5.18)가 선명히 새겨져 있고, 묘비 뒤편에는 '묘주 김정남'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묘지 관리인은 "최근 들어서 묘지를 찾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현지 소식통은 "지난 2008년까지 북한 관리들이 성씨 묘를 주기적으로 관리했지만, 이복동생인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굳어져 가면서 묘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져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고 전했다.

또 "김정남도 성씨 사망 후 한동안은 추석 등 명절이면 모스크바에 와 성묘를 하곤 했지만, 김정은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는 더이상 모스크바에 오지 않았다"면서 "이제 묘주인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성씨의 묘가 완전히 방치되거나 북한 당국에 의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1937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성혜림은 서울 풍문여중을 다니던 도중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월북했다. 이후 평양 제3여자중학교를 거쳐 평양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영화배우가 됐다.

19살의 나이에 월북작가 리기영의 장남인 리평과 결혼해 딸까지 낳고 뛰어난 미모와 특유의 분위기로 북한 최고의 여배우로 활동하던 중 영화광인 김정일의 눈에 들어 남편과 이혼해야 했다.

32살의 나이인 1969년부터 다섯 살 연하의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한 그는 1971년 아들 김정남을 낳았지만 김일성은 이혼한 경력이 있는 그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씨는 김정일이 두 번째 여자인 김영숙과 결혼한 뒤인 1974년 고모인 김경희에 의해 쫓겨나 세 살 난 아들 김정남을 남겨두고 모스크바로 떠나와야 했다. 김정남은 성씨의 어머니와 언니 성혜랑이 맡아 키웠다.

김정일은 이후 세 번째 여자인 재일동포 출신 무용수 고용희와의 사이에서 김정철과 김정은을 얻었다.

김정일의 사랑을 잃고 아들마저 고국에 버려둔 채 동토의 땅 러시아에서 외롭게 살던 성씨는 결국 2002년 5월 유선암으로 숨졌다.

성씨가 평생을 그리워했을 아들 김정남의 말년과 죽음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권력 승계 과정에서 이복동생인 김정은에게 밀려나 중국과 마카오 등을 떠돌던 김정남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마카오행 항공편의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셀프체크인 기기를 사용하던 중 신원을 알 수 없는 2명의 여성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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