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영웅 목숨 앗아간 하프파이프는 '공포와의 싸움'
프리스타일 스키 '선구자' 버크, 2012년 연습 중 사고로 숨져
김광진 "선수도 경기 때는 두렵다"
(평창=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미끄러운 눈밭을 맨몸으로 질주하는 스키는 인간이 즐기는 무동력 스포츠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스키 종목 중에서도 최고봉인 알파인 스키 활강은 남자 선수의 경우 시속 140㎞를 넘고, 그만큼 다치는 선수도 많다.
활강 종목만큼 부상이 잦은 종목이 있으니, 바로 하프파이프다.
파이프를 절반으로 자른 모양의 내리막 코스를 오가며 점프하는 하프파이프는 잘못 착지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선수는 파이프의 끝 부분인 플랫폼으로부터도 3~5m가량 점프하는데, 머리부터 떨어지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프리스타일 스키의 영웅이라 불리는 사라 버크(캐나다)는 연습 도중 목숨을 잃었다.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했던 최고의 여자 선수 버크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여자부 초대 챔피언이 될 거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2012년 1월 미국 유타주의 파크 시티에서 연습 도중 뇌를 심각하게 다쳐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대표팀 구창범(37) 코치는 "눈 위에서 펼쳐지는 하프파이프는 경기가 진행되면서 코스 모양이 달라진다.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선수들이 두려워한다. 경기하다 하반신 마비가 되는 선수도 있고, 부러지는 건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밥 먹고 스키만 타는' 선수들이지만, 인간의 본능인 공포감을 완벽하게 숨기는 건 어렵다.
한국 프리스타일 스키 대들보 김광진(22)은 "요즘 1천260도 회전하는 '더블콕'이라는 기술을 새로 연습 중이다. 이걸 하면서도 너무 두렵다"고 고백했다.
더블콕은 공중에서 두 차례 몸의 방향을 바꾸는 고난도의 기술이며, 스노보드 최고의 스타 숀 화이트(미국)의 주 무기다.
공중에서 여러 번 몸을 움직여야 하는 기술이라 그만큼 위험한데, 2009년에는 미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케빈 피어스가 더블콕을 연습하다 뇌를 다쳐 선수생활을 마감하기도 했다.
김광진 역시 "다행히 아직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최근 더블콕 연습하다 갈비뼈가 부러질 뻔했다. 평소 근육운동을 열심히 해서 골절까지는 안 갔고, 며칠 뒤 대회에 출전해 3등까지 했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부상 이후 슬럼프를 겪은 김광진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이를 극복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깨려고 '죽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경기한다. 겁을 먹으면 몸이 안 움직이니, 공포를 이겨내야 하는 종목"이라면서 "그래도 재미있다. 무서운 걸 이겨낼 수 있는 건 즐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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