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日독도도발 대응 '수위조절'…안보협력·여론 딜레마
日공사 비공개 초치…강경 대응시 '독도 분쟁지역화' 우려
북핵 협력도 고려 변수…한일외교회담서 실마리 마련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잇따른 악재로 한일관계가 사실상 수렁에 빠지면서 정부가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부산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한일관계가 파행하는 가운데 일본이 14일 독도 영유권 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을 마련해 고시함으로써 양국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일본 초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도 독도와 센카쿠열도가 일본 땅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고 각급 학교 교육과정 및 교육내용의 기준이 되는 지침인 학습지도요령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도발은 탄핵 정국과 북핵 딜레마에 따른 '내우외환'으로 강경한 맞대응이 어려운 우리 정부의 상황을 염두에 둔 일본의 치밀하고 의도적인 도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에 반발해 지난달 9일 일시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일본대사가 한 달 넘게 귀임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관계가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정부는 과거사 및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에 따라 일본에 항의했다.
정부는 이날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서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으며 즉각 철회를 요구한다"면서 "독도에 대한 어떤 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메시지는 단호했지만, 정부의 대응 형식은 절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외교부는 이날 오후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로 초치하면서도 사전에 초치 시간을 공개하지 않는 등 사실상 비공개로 진행했다. 또 외교부 또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보다 급이 낮은 '외교부 대변인 논평'으로 입장 발표의 수위를 조절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일본의 주한일본대사 일시 귀국에 맞서 주일한국대사도 귀국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황을 감안하면 구체적인 조치에서는 '펀치'의 강도를 조절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이날 학습지도요령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고 약 한 달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3월께 최종 확정될 예정인 점 등을 고려해 수위를 조절한 것을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은 최종 확정 단계에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의 핵심은 바뀔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지 않기 위한 우리 정부의 고민이 반영됐다는 관측이다.
사안의 심각성, 국내여론 등을 고려하면 '펀치'의 강도를 높일 법도 했지만, 일본의 교과서를 통한 독도 도발에 대해 강경 대응할 경우 독도 분쟁화를 노리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계산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안보협력 및 경제협력이 필요한 현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발사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고, 또 중국과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대응과 관련한 일본과의 공조는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한일관계는 한미일 공조와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최근 정상회담에서 "북핵 위협 등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미일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공동으로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해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끌어냈고, 3국 국방 당국은 화상회의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긴밀히 공조하고 관련 정보공유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일관계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오는 16일부터 독일에서 열리는 G20(주요20개국) 외교장관회의와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회담이 주목된다.
한일 양국이 외교장관 회담에서 담판을 통해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 등 갈등 완화 계기를 만들기 위한 묘안에 합의할 수 있을지가 양국관계 갈등 장기화 여부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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