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르고, 염산 뿌리고'…잇따르는 막무가내 분노범죄 대책은?

입력 2017-02-15 09:30
'불 지르고, 염산 뿌리고'…잇따르는 막무가내 분노범죄 대책은?

개인적 분노·장애·정신병 치부 경향…관련 통계 연구도 부족

전문가 "사회구조 원인 인정하고, 세분화한 연구·대응책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개인적, 사회적 불만 등으로 쌓인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는 막무가내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좌절이나 박탈감이 주된 원인인 이같은 분노범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개인적 일탈이나 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타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측면에서 분노범죄 예방대책이 절실하지만, 현재 분노범죄를 구분하는 연구와 통계도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분노범죄를 구조적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범죄별 분석으로 접근해야만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버스에 불 지르고, 트럭 몰고 돌진하고, 염산 뿌리고

"불을 지르면 토지보상문제에 대한 저의 불만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 가질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 6일 전남 여수시에서 승객이 탑승해 있던 시내버스에 올라타 시너로 불을 지른 문모(69)씨가 밝힌 범행 동기다.

문씨는 3천∼4천 평 되는 자신의 땅을 정부가 수용·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데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

그는 "일부러 지켜보는 사람이 많고 승객이 많은 퇴근길 만원 버스에 불을 냈다"며 "이러면 모두가 내 문제에 관심을 둘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에는 광주 북구 한 병원에 만취한 임모(33)씨가 난입해 주변 약국에서 사 온 저농도 염산을 병원 직원 3명에게 뿌렸다.

임씨는 '정신병원에 재입원시켜달라'는 자신의 요구를 병원 측이 거절했다는 이유로 염산을 투척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임씨는 당초 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1종 수급자의 경우 한 달만 입원할 수 있다는 기준 때문에 퇴원한 뒤 재입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증폭된 사회 갈등에 따른 분노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태블릿 PC 보도로 전 국민이 고충을 겪는 등 세상이 시끄럽다'며 해병대 군복을 입은 김모(45)씨가 서울의 모 언론사 사옥에 트럭을 몰고 돌진했다. 같은 달 1일 오후에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내 추모관에 백모(48)씨가 들어가 불을 질러 영정을 포함한 내부를 모두 태웠다.

백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방화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죽는 것을 도와주겠다며 대검찰청 청사에 40대 남성이 굴착기를 몰고 돌진하기도 했다.



◇ '분노범죄' 인정하고 연구해야 대안 마련 가능

분노범죄는 조현병 등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한 결과이거나, 개인적·사회적 외부요인에 따른 반감·공격성의 발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같은 개인적·사회적 요인으로 발생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를 '분노조절장애' 등 정신병력 탓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인식이라면 모든 범죄가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으면 해결되는 문제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최근 잇따른 분노범죄는 사회적 구조에서 목표를 이룰 수 없어 발생한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사회·경제적 간극이 커지면 '모든 게 내 탓이 아니고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 놨다'는 좌절이 공격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국정농단과 관련한 개인적 좌절감과 엘리트층에 대한 박탈감이 초근 공격행위로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분노범죄를 다루고 관리하는 우리 사회의 대응은 아직 미약하다. 수사당국인 경찰청 차원의 통계도 아직 없다.

범죄별로 '현실불만'이나 '타인을 상대로 한 범죄' 등 죄명에 따른 포괄적인 통계만 존재한다.

통계조차 없으니 범죄의 심각성과 분석과 대안도 부족하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분노범죄의 한 유형인 증오범죄에 대해 "논의와 대응을 위한 통계나 정의가 불분명하다"며 '증오범죄 통계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뒤늦게나마 묻지마식 범죄나 증오범죄에 대한 기초 자료를 구축하는 첫발을 뗀 셈이다.

전문가들은 분노범죄를 개인적으로 범죄로만 치부하지 않고 구조적인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 범죄의 특성을 구분하고 분석해야 그에 따른 대응책도 마련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반사회적 모든 범죄를 분노범죄로 한정하는 용어는 지양해야 한다"며 "범죄의 특성을 구분해 정의하고, 누구를 향한 범죄인지 정확하게 분석해야 대응책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범죄 양상을 일부 개인 차원의 분노 조절 문제로 국한해 보는 경향이 있다"며 "구조적인 사회현상으로 분노범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야 대안 마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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