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고시촌 밸런타인 초콜릿 대신 도시락…"선배들 응원해요"

입력 2017-02-14 10:31
노량진 고시촌 밸런타인 초콜릿 대신 도시락…"선배들 응원해요"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 도시락 나눔 행사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도시락 받고 힘내세요"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 패딩을 입고 스마트폰이나 영어단어가 잔뜩 적힌 손바닥만 한 종이에 고개를 박고 걸어가는 고시생들 사이로 빨간 바람막이 재킷을 걸친 대학생들의 응원이 울려 퍼졌다.

연인끼리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한다는 밸런타인데이인 1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초콜릿 대신 도시락이 오갔다.

대학생자원봉사단 'V원정대' 40여명은 노량진동 한 경찰학원 앞에서 공무원시험 준비생 등 취업준비생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이 단체는 매해 2월 14일을 '발런티어(봉사)데이'로 보내자며 지난 2011년부터 관련 행사를 해왔다.

올해는 '예비취준생'으로서 취준생들 어려운 처지에 공감해 노량진으로 나왔다.

전성민 V원정대 대표는 "고시생들이 아침도 못 먹고 새벽부터 학원에 나와 수업 듣기 좋은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도시락 나눔 행사를 계획했다"고 말했다.

이날 준비된 도시락은 500개. 따뜻한 차와 손수 적은 응원편지도 건넸다.

한쪽에서는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등 영화 속 영웅으로 '변신'한 학생들의 유쾌한 '호객행위'도 계속됐다. 도시락은 안 받더라도 '하이파이브'는 하자며 들이대는 학생들을 보고 무표정하게 거리를 지나던 고시생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이내 웃으며 손을 맞췄다.

도시락을 받으려는 이들로 20m 가까운 줄이 생기더니 행사를 시작한 지 1시간만인 오전 8시 30분께 도시락이 동났다.

고시생들은 추운 날씨에 응원을 나온 후배 대학생들에게 고마워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러 경남 고성에서 노량진으로 왔다는 박모(27)씨는 "부모님 지원에 의지해 생활하다 보니 돈도 아낄 겸 아침을 걸렀는데 도시락을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그는 "빨래를 못 해 신을 양말이 없었다"면서 "양말을 사러 나왔다가 '행운'을 만났다"고 웃고는 곧 걸음을 옮겼다.

박씨처럼 고시생들은 후배들 도시락 선물에 잠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절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도시락을 나눠준 행사장 바로 옆 편의점 앞에 진열된 밸런타인데이 맞이 '1+1' 초콜릿에 눈길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도시락을 들고 바로 학원건물로 들어갔다.

행사장에 마련된 응원문구를 적는 공간에는 "올해 반드시 합격", "합격해서 효도하자" 등 합격을 소망하는 쪽지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고시생은 "춥고 배고프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날 캡틴아메리카로 분해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학생 송영진(23)씨는 "나도 졸업반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이어서 고시생분들의 처지에 공감이 간다"면서 "모두 힘내서 성공하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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