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모피아' 해체하나…전직 중앙은행·금감원장들 비리수사
국가부도 위기 책임자 8명 입건…"부실은행 속사정 알고도 규제 안해"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스페인이 2012년 국가부도 위기를 부른 방키아 은행 사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전·현직 금융관료들에게 칼을 빼 들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페인 최고 형사법원은 2011년 부실위험이 제기됐던 방키아의 기업공개(IPO)를 막지 못한 혐의로 전·현직 고위 금융관료 8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조사 명단에는 미겔 앙헬 페르난데스 오르도네스 전 스페인 중앙은행장, 훌리오 세구라 산체스 전 금융감독원장, 페르난도 레스토이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올라있다.
현재 중앙은행에 재직 중인 고위 관료 3명도 명단에 포함됐지만, 이번 조사로 모두 사임할 예정이다.
이들 관리는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 법리 검토가 이뤄지는 절차를 밟고 있어 아직 기소되지 않았지만 곧 법원에 끌려 나오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키아 은행은 지난 2012년 스페인을 최악의 금융위기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다.
스페인의 저축은행 7곳을 합병해 2010년 출범한 방키아는 이듬해 7월 개인과 기관투자자로부터 33억 유로(약 4조원)를 끌어모으며 마드리드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그러나 회계부정 등으로 곧 파산위기에 몰렸고 수십만 명의 소액 주주들이 자신들의 주식 가치가 휴짓조각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스페인 정부는 200억 유로(24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방키아에 투입했지만, 은행은 그해 스페인 기업역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했다.
그 결과 유로존 4위 경제 대국이었던 스페인은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까지 처했다.
법원은 방키아의 감독기관이었던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상장을 막아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판단의 증거로 중앙은행 관료들이 상장 전 주고받은 내부 이메일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메일에서는 감독기관 관료들은 방키아의 부실은 물론 상장을 막아야 할 이유를 충분히 알았다는 정황이 자주 등장해 공분을 사고 있다.
한 이메일은 방키아를 "적자를 내는 기계"라고 묘사했고 다른 이메일은 은행 이사회에 정치인들이 심하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특히 IPO 2개월 전인 2011년 5월에 작성된 한 이메일에는 방키아가 수익성과 유동성, 지급능력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며 빨간 대문자로 '상장불가능'이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이는 관료 집단의 조직적 묵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으로 관리들의 개인비리 혐의가 추가로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는 방키아 초대 은행장과 IMF 총재를 역임했던 로드리고 라토에 대한 조사와 별도로 진행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라토는 2003∼2012년 개인적인 용도로 방키아 은행 법인카드를 부정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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