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에 영혼 짓밟힌 두 소녀 이야기…영화 '눈길'

입력 2017-02-13 19:03
일본군에 영혼 짓밟힌 두 소녀 이야기…영화 '눈길'

삼일절에 개봉…'귀향' 이어 '흥행 기적' 이룰까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1944년 일제 강점기 말. 집이 가난해 학교도 못 가는 종분(김향기)은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부잣집딸 영애(김새론)가 부럽기만 하다.

종분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영애를 부러워하며 어머니에게 자신도 유학을 보내달라고 떼를 쓴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남동생과 있던 종분은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군의 손에 이끌려 낯선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일본으로 떠난 줄 알았던 영애도 같은 열차 칸에 내동댕이쳐진다.

두 사람이 내린 곳은 낯선 땅 만주의 한 일본군 부대. 이들은 그곳에서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눈길'은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제의 손아귀에 끌려가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러나 이들이 겪은 성적인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대신 소녀들이 온몸으로 표현하는 공포와 절망감, 하얀 눈 위에 흘린 핏자국으로 이들이 당했을 고통의 크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할머니가 된 종분(김영옥)의 일상과 과거 회상 장면을 교차해 보여준다. 종분은 지옥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왔지만, 그가 마주한 세상은 또 다른 생지옥이다. 반겨주는 가족은 없고, 과거의 기억은 평생 그를 따라다닌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근근이 살아가는 종분은 자신처럼 처지가 딱한 이웃집 여고생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런 일은 없었던 일이라며 스스로 속이며 견뎌낸 세월"이라고 털어놓는다.

'눈길'은 2015년 삼일절을 맞아 KBS에서 동명의 2부작 드라마로 먼저 선보인 작품이다. 방영 당시 '수작'이라는 평을 들으며 재방송 요청이 이어졌던 화제작이다. 제작진은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 촬영 때 영화 스태프들을 참여시켜 극장용 버전으로 별도 제작했다.

당시 만 열다섯 살이던 김향기와 김새론이 각각 종분과 영애를 연기했다. 둘 다 아역배우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펼쳤다.



이나정 감독은 13일 열린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촬영 당시 배우들이 미성년자여서 성적인 폭력과 관련된 장면을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면서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존해있는 상황에서 그런 장면을 영화적 볼거리로 표현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것 같아 자제했다"고 말했다.

김향기는 "한창 사춘기이던 중학교 3학년 때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역사의식이 깊어졌다"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누군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새론도 "추운 겨울에 지방을 오가며 촬영했지만, 영화를 찍을수록 실제로 당했던 소녀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게 돼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떠올렸다.

'눈길'은 삼일절인 다음 달 1일 개봉한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도 삼일절을 앞두고 개봉해 359만 명을 동원한 만큼, '눈길'도 또다른 흥행 기적을 낳을지 주목된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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