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준 신임 서울시립미술관장 "집에 있는 '방콕'족이 경쟁자"
"더 많은 사람이 미술 향유하도록…사립미술관에서도 배울 것"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문화 향수 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우리 국민의 연평균 미술관 전시 관람 횟수는 0.3회로 나타났다. 1년에 한 차례도 미술관을 찾지 않는 사람이 태반인 셈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미술관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최효준(65) 신임 서울시립미술관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이다. 지난 9일 취임한 최 관장으로부터 임기 2년의 구상을 들었다.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미술관이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과도 경쟁해야 한다고 했어요. 제 발로 걸어 나와서 전시를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 말에 동의합니다. 요즘은 '방콕' 하면서도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콘텐츠가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더 쉽지 않은 싸움이 됐네요."
최 관장은 "전시를 보러 오지 않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미술관도 일종의 마케팅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립미술관에서도 배울 게 있다면 배우겠다"고도 했다. 사람들이 어떤 전시를 보고 싶어 하는지, 미술관에 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인지, 가령 디뮤지엄처럼 젊은 여성 관람객이 많이 찾는 사립미술관의 강점은 무엇인지 등 체계적인 진단과 연구를 통해 전략을 짜겠다는 설명이다.
1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마케팅 용어가 자주 등장했다. 최 관장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MBA과정을 마친 최 관장은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 주변에 화랑들이 많다 보니, 그림에 눈을 뜨게 됐다. 5년 직장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그는 아트 컨설턴트로 변해 있었다. 이후 삼성미술문화재단 수석연구원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 전북도립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공공미술관이다. 최 관장도 이 점을 강조하면서 상업적인 공간으로 바꾸자는 건 절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다만 "미술관도 사회에 속한 기관이고 공공미술관은 공공예산을 많이 쓰지 않느냐"면서 "그만큼 많은 사람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자체가 온갖 미술품 이미지를 갖춘 일종의 미술관이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미술관을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술품만큼은 미술관에 와서 봐야 합니다. 음악이야 요즘 뛰어난 재생 장치가 많아서 원하는 장소에서 들을 수도 있잖습니까. 미술은 현장에 와서 오리지널 작품의 아우라를 대면해야 진정으로 그 작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전시과장을 지낸 지 약 15년 만에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으로 돌아온 데 대해 "당시 경희궁 공원에서 지금 자리로 재개관을 준비하느라 조명부터 마룻바닥까지 제 손을 안 거친 게 없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한편 최 관장은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에서 최종 후보가 됐으나, 당시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 결정을 내렸다. 당시 최 관장이 김 장관을 "'문사코'(문화적인 사이코패스)"로 칭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미국 금융위기 당시 회사를 붕괴시켜놓고 자신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코퍼릿 사이코패스'(corporate psychopath)에 빗댄 말이었다면서 통상적으로 쓰는 '사이코패스'를 뜻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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