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처럼 초소 운영하기도…선진국 가축질병 방역은

입력 2017-02-12 07:11
군사시설처럼 초소 운영하기도…선진국 가축질병 방역은

입국심사만큼 어려운 농장출입…촘촘한 방역망도 한몫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등 가축 질병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축산강국의 공통점은 질병 유입에 상관없이 항시 거의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촘촘한 예찰 활동으로 바이러스 유입 위험을 최소화하고, 일단 터졌다 하면 일원화된 국가 방역체계를 중심으로 총력 대응에 나선다.

농가 현장에서는 대규모 축산기업을 중심으로 엄격한 출입 관리가 이뤄지는 등 자발적인 차단방역 노력이 더해지면서 방역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 군사시설처럼 '24시간 초소' 운영…농장 여권도 등장

12일 농축산식품 전문 마케팅·홍보기업 GSA에 따르면 축산 강국인 남미 칠레에서는 정부가 가축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 농장을 짓도록 유도한다.

인구 밀집 지역의 인근이거나 농장 간 거리가 1㎞ 이상 떨어져 있지 않으면 축산업 허가를 받을 수 없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많은 소규모 영세 농가들이 도시 인근 인구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정부와 축산업계가 협력해 대대적인 축산업 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그중에서도 칠레 최대 축산기업인 '아그로수퍼'는 세계 최초로 이른바 '농장출입 여권제'를 도입했다.

1만 5천여 명의 근로자는 전부 농장출입 여권을 발급받아야 하며, 방문객 중 가축 질병이 발생한 나라를 여행한 사람은 최소 2주 전에 필요한 사전 검역과 방역 절차를 거쳐야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여권에는 상세한 인적 사항 외에 국내외 여행 및 접종 기록까지 입력돼 전산으로 실시간 관리된다.

여권을 발급받았더라도 농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각각 한 번의 샤워와 두 번의 위생복 갈아입기를 반복해야 한다.

농장 반경 3㎞에는 군사시설처럼 초소를 설치해 24시간 운영하고, 야생 동물 출입 등 위험요인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30년 넘게 '구제역 제로'를 기록 중인 덴마크에서는 '교차 감염'을 막기 위해 농장을 지을 때부터 일종의 완충지대인 '바이오 시큐리티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우제류(소·돼지) 가축을 사육하는 농업인들은 자체 차단방역 계획을 세워 수의 전문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매일 스스로 가축의 건강 상태를 점검해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즉각 수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 평상시 백신 2천만마리분 비축…방역인력은 한국 2배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그 즉시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방역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은 것은 축산강국 자리를 지키는 노하우로 꼽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2014~2016년 구제역 백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축산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살처분 정책을 기본으로 삼고 있지만 위급 상황에 대비해 평상시에도 안정적인 백신 공급·접종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9가지 계통의 항원을 2천만 회분 이상 보유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 5일 이내에 신속히 백신 접종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2001년 대규모 구제역 피해가 발생했던 네덜란드 역시 발생 초기 즉각적인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9개 계통의 백신 1천600만회분을 상시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위급 시에는 5일 안에 50만회분을, 이어 4일마다 추가로 50만회분씩 추가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백신 정책을 가장 기본적인 구제역 예방대책으로 삼으면서도 항체 형성률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 하고 있다.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검출됐음에도 백신 재고가 충분하지 않아 부랴부랴 긴급 수입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축산 선진국의 방역전담조직은 한국과 질적·양적으로 차이가 크다.

일본은 2004년부터 중앙정부의 진흥 업무를 맡는 축산부와 방역 업무를 맡는 소비안전국을 분리했다. 한국은 농식품부 축산정책과에서 축산업 진흥 업무와 방역위생 업무를 모두 전담하고 있다.

일본은 중앙정부의 방역 관련 담당 인력만 900여 명, 지자체 소속 수의사는 2천여 명으로 우리나라의 두 배에 달한다.

AI와 관련해 이상 증상을 발견한 경우에만 신고하게 돼 있는 한국과 달리 평상시에도 매달 농가에서 가금류 폐사율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올겨울에도 한일 양국에 같은 유형의 AI가 발생했지만 살처분 피해 규모는 우리가 28배나 많았다. 일본에서 구제역은 2010년 이후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류영수 건국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 축산 선진국들은 수입 축산물을 몰래 반입하다 적발되면 다시 입국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를 하고 있고, 유럽의 경우에는 중동 등 가축 질병 빈번 발생국 국민이 자국민만큼이나 왕래가 잦은데도 가축 질병을 잘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가축 질병은 이번만 넘기면 된다는 식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식량자원을 지키고 국민 생명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방역시스템이 '교과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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