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교양서도 '문제도서'…'블랙리스트'는 1980년대?
'좌파 연상 제목·현대사 모순 지적' 관련 인사 지원 배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전명훈 기자 =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면면을 보면 문화·예술 영역에 관한 한 정부의 '문화 감수성 시계'가 냉전 시대인 1980년대에 맞춰진 게 아니냐는 느낌을 준다.
연합뉴스가 10일 입수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좌파'로 분류된 문화·예술인이나 이들의 작품은 여지없이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
특검은 공소장 별지 '범죄일람표'에서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과 단체, 작품 등의 목록을 정리했다. 이들을 합하면 374건에 달한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출판진흥원이 정부 지원을 받는 책인 '세종도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문제도서'를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여기에는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외에도 철학자 이진경씨의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인 박정대씨의 시집 '체 게바라 만세' 등이 포함됐다. 좌파를 연상하게 하는 제목들이다.
그러나 이씨의 책은 마르크스 이론을 쉽게 풀어쓰고 현대적 의미를 모색한 것으로, 서양철학 교양서로 볼 수 있다. 이씨는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다.
박정대씨의 시집은 제도적 속박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정신을 노래한 것으로, 2014년 대산문학상 수상작이다. 소설가 김홍신씨의 '단 한 번의 사랑'은 친일세력의 불완전한 청산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정부를 비판한 전력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불이익을 받은 사례도 많다.
인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 '은교'를 펴낸 소설가 박범신씨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 후보군에서 배제됐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가 은희경, 황정은, 윤대녕, 시인 정호승,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등도 문화예술위 심의위원 선정 배제, 주목할만한 작가상 지원 배제, 세종도서 선정 배제 등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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