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점호'하고 고급 차에 절까지…농아인 사기단의 민낯

입력 2017-02-09 18:09
수정 2017-02-10 10:45
'카톡 점호'하고 고급 차에 절까지…농아인 사기단의 민낯

총책 중심으로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SNS 대응팀'까지 가동

피해 농아자들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협박·회유 동영상 인터넷에 올리기도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전국 농아인 500여명으로부터 약 280억원을 뜯은 농아인 사기단 '행복팀'은 총책을 중심으로 체계적 역할분담을 통해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범죄조직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행복팀'은 대전팀, 경기팀, 경남팀, 서울팀 등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눠 팀별로 관리했으며 조직원은 총책까지 포함해 총 36명이었다.

이 조직은 내부에서 '제일 높은 분'으로 통한 총책 김모(44)씨 밑으로 총괄대표, 지역대표, 지역팀장 등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했으며 상명하복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갖췄다.

각 팀을 총괄하는 지역대표는 팀원들에게 지시해 농아인들로부터 받은 돈을 현금화해 김 씨에게 전달하는 전달책 역할을 했다.

또 피해 농아인들로부터 총책에 대한 충성서약서를 받거나 조직 행동강령 등을 만들어 조직원들을 단속했다.

행동강령에는 '간부들을 보면 90도로 인사한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 '스파이 짓 하면 안 된다' 등 내용이 들어있었다. 또 '대표들과 조직에 대해 말하고 배신하면 안 된다'라든가 '이를 거역하면 끝까지 찾아내 죽이고 3대까지 거지로 만든다'는 등 무시무시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내부적으로 30여명 규모의 'SNS 대응팀'도 있어 조직과 관련한 비난 글이나 영상 등이 올라오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장애가 있으나 어느 정도 듣고 말하기가 가능한 농아인 3명으로 구성된 '의사소통팀'은 금융기관 본인 확인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2천만원 이상 투자자는 자체 심사를 거쳐 '팀원'으로 가입시킨 뒤 그 증표로 주홍색 티셔츠를 입혔다.

이들은 SNS에 행복팀 관련 거짓 자료를 올려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총책을 신격화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새로 물색한 농아인이 대출을 받기 힘든 처지라면 'XXX는 똥이니까 버려라'고 문자 보냈다.

이들은 피해 농아인들이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회나 개인 모임 등에 나가지 말 것을 지시하고 주말이면 지역별 정기모임을 개최했다.



단합·결속을 핑계로 주기적 합숙교육도 실시해 세뇌교육을 하거나 다단계 사기처럼 농아인 투자자 유치를 종용했다.

농아인들이 투자를 거부하거나 조직을 탈퇴하려고 하면 4∼5명씩 집이나 직장으로 몰려가 협박하거나 회유했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농아인의 특성으로 인해 협박이나 회유도 주로 SNS를 활용한 영상을 통해 이뤄졌다.

'행복팀'의 범행을 폭로하거나 주의를 당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미행 영상을 찍어 보내거나 가면을 쓰고 나와 수화로 경고하는 모습을 촬영해 올리기도 했다.

한 여성 피해자는 내부정보를 유출한 것을 반성하며 다시는 누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수화를 찍은 뒤 자신의 SNS에 올려야 했다.

'행복팀' 사기 예방활동을 하는 한 여성이 문란한 성생활을 하며 남자들의 돈을 갈취한다는 내용으로 수화 동영상을 촬영해 SNS에 올린 경우도 있다.

피해 농아인들은 지역별로 고유 번호가 있었다. 조직원들은 피해 농아인들의 이탈을 단속하는 차원에서 밤이 되면 기습적으로 단체 카카오톡방에 번호순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카톡 점호'를 하기도 했다.

가령 '1번 000'이라는 카톡 뒤에는 '2번 XXX, 3번 ◇◇◇...' 순으로 마지막 번호까지 순서대로 카톡을 보내는 식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거나 순서가 틀리면 제대로 될 때까지 계속 진행됐다.

가끔 총책이 지역대표나 그 밑에서 일하는 팀장에게 고급 리무진을 '하사'할 때가 있었다. 이때마다 이들은 피해 농아인들과 함께 '총책의 은혜에 감사한다'며 차량을 향해 절을 하는 등 사이비 종교 집단과 같은 모습마저 보였다.

물론 대다수 피해 농아인들은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언젠가 우리도 돈 박스가 뒷좌석에 실린 고급 차량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총책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갖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문자, 동영상, 사진 등을 남긴 게 결국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며 "조직원들이 남긴 증거 덕분에 이번 사건이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저질러진 범행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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