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권력 경쟁과 지배권의 제한"
신간 '정치의 도덕적 기초'
이언 샤피로의 '정치의 도덕적 기초' 강의.[https://www.youtube.com/watch?v=u3-naV8kF2g&list=PL2FD48CE33DFBEA7E&index=2]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해 11월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정치철학자인 이언 샤피로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는 신간 '정치의 도덕적 기초'의 머리말에서 "우리가 정부에 충성을 다해야 할 때는 언제이고, 거역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라고 묻는다.
이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행위인 '정치'가 정당성을 갖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의 기저에 있는 도덕적 기초를 찾기 위해 다양한 사상을 탐구한다.
그는 정치적 정당성과 관련된 서구 사상으로 공리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계약론 등을 꼽는다.
공리주의는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로 요약된다. 이는 행복을 극대화하려면 정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문제는 공리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노예가 잃은 행복보다 노예주가 얻는 행복이 크다면 노예제는 정당화될 수 있다. 사회적 공리를 이유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된다면 민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착취'가 정치적 정당성의 기준이 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이유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회주의는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며 온갖 착취가 자행되는 체제로 드러났다.
저자는 이어 존 롤스의 '정의론'으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을 살펴본다. 롤스는 모든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고, 분배를 한다면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러한 분배의 원칙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는 서민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이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이론이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계몽주의'를 제시한다. 계몽주의는 우리의 환경과 우리 자신의 참된 본성을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진리 추구'와 '개인 권리'를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계몽주의가 구현된 정치 체제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권력 경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정권을 언제든 교체하고 대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저자는 "정당한 정치체제에는 반드시 부패와 부정을 폭로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며 "경쟁이라는 요건 때문에 민주주의에서는 반대할 권리가 필수 불가결하다"라고 말한다.
이어 "민주주의는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에 인질로 잡히기 십상인) 권력 독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해독제"라고 평가한다.
책은 저자가 예일대에서 '정치의 도덕적 기초'를 주제로 했던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다. 강의는 예일대의 지식 공유 프로젝트인 '오픈예일코스' 웹사이트(http://oyc.yale.edu)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문학동네. 노승영 옮김. 36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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