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여성노동, 경제학으로 들여다보기

입력 2017-02-09 07:40
육아와 여성노동, 경제학으로 들여다보기

신간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최근 2∼3년새 불어온 페미니즘 열풍이 올해 대선을 계기로 결실을 볼 수 있을까. 주요 후보들이 '아빠·엄마 육아휴직 의무할당제'와 '육아휴직 3년 법안'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육아맘 근무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단축하겠다고 한 유력 후보에게 '육아 독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쏟아낼 만큼 대중의 인식은 멀찌감치 앞서간다. 대선 핵심이슈로 떠오른 육아·여성노동 문제를 경제학 관점에서 들여다본 책들이 나왔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49)은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다산4.0)를 펴냈다. 저자의 학문적 통찰력과 두 자녀를 키우는 경험을 결합한 '육아 실물경제학 수기'다.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원래 TV프로그램에서 해녀 할머니가 한 말인데, 한국의 평균적 부모들의 삶을 대변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아이 하나를 대학에 보낼 때까지 드는 돈은 2억원 정도다. 한국에서 육아는 "2억원 이상을 쓰거나, 2억원만큼 아기에게 미안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예산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20∼30대 부모가 필요하지 않은 육아용품을 제외해야 한다면 비싼 아동복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버버리' 같은 고가의 아동복을 사입히는 일은 톨스타인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소비에 해당한다. 정작 아이는 자기가 입는 옷이 비싼지, 저렴한지 알지 못한다.

유모차도 비슷하다. 유모차는 수십 만원, 자동차는 수천 만원이므로 자동차에 유모차를 맞추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유모차를 집어넣으려고 자동차를 바꾸는 부모가 있다. 저자도 처음에는 "돈을 좀 써야겠다" 싶어 국산 중 가장 비싼 유모차를 샀다가 몇 번 쓰지 못했다. 너무 커서 왜건형 승용차에도 겨우 들어갔고 옮기기도 어려웠다. 결국 작은 유모차를 다시 사서 아내의 소형차에도 실으며 잘 쓰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정부의 출산·육아 정책은 '숫자 갖고 하는 장난질'이자 '전형적인 모양내기'다. 다둥이, 즉 셋째 아이를 낳게 하는 데 집중된 정책들이 특히 그렇다. 결혼도 두려운 젊은이들이 "빨리 셋을 낳아 맘 편하게 아이들을 맡겨야지"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장·단기 효과를 감안할 때 첫째 아이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편이 훨씬 낫다. 그래야 결혼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아이를 낳는 부모가 늘어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388쪽. 1만6천원.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현대 주류 경제학의 기틀을 놓은 애덤 스미스(1723∼1790)가 '국부론'에 쓴 문장이다. 스웨덴 출신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은 이 문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를 기르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아내가 없었다면 푸줏간 주인은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스미스의 어머니는 오로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줬을까.

마르살은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부키)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가사노동에 눈감은 스미스의 경제학 모델이 오늘날 노동영역에서 양성간 불평등의 기원이 됐다고 본다. 그가 상정한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합리적·이성적·계산적이고 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두려움이 없다. 현실에서도 흔치 않은 '전형적' 남성이 보편적 인간인 반면 여성은 비경제적 존재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비가시적이지만 사라지지 않는 인프라로 간주돼 경제지표에 잡히지 않는다.

많은 여성이 고용시장에 진출한 요즘은 불평등이 해소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저자의 대답은 오히려 반대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위해 포기한 가사노동에 또다른 여성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가사도우미의 시급이 밖에서 일하는 여성의 시급보다 현저히 낮을 때만 가능하다. 남녀간은 물론 여성들 사이의 불평등까지 심화한다.

이 악순환 역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애덤 스미스가 나온다. 스미스 이후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목적은 '돈 아니면 사랑'으로 갈렸고 사랑에서 비롯되는 돌봄은 경제적 보상이 중요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나이팅게일도 간호사의 정당한 보수를 위해 평생 싸웠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리먼 브러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금융위기는 다른 양상을 띠었을 것이라고 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많은 남성일수록 위험한 투자를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관점이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여성들은 1960년대 혹은 2차대전 때부터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김희정 옮김. 328쪽. 1만5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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