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정부 인사 중독으로 혼수상태…독살 시도 의혹 증폭(종합)

입력 2017-02-08 17:11
러시아 반정부 인사 중독으로 혼수상태…독살 시도 의혹 증폭(종합)

2년전 피살 러 야권지도자 넴초프 측근 카라-무르자…가족 "푸틴은 살인자"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유철종 특파원 = '반(反) 푸틴' 성향의 러시아 시민 운동가가 급성 중독으로 중태에 빠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전역에서 지난 2015년 괴한의 총에 맞아 피살된 러시아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일을 해오던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35)가 지난 2일 미확인 물질에 의한 중독 증세를 보여 모스크바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중태여서 의료진이 의학적으로 혼수상태를 유도했으며, 현재 상태는 안정적이나 여전히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라-무르자의 아내 예브게니야는 "남편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 박동이 빨라져 입원했다"며 "지난 2015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의도적 중독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브게니야는 정확한 독극물 성분 파악을 위해 남편의 머리카락, 손톱, 혈액 샘플을 이스라엘과 프랑스 전문기관에 보내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브게니야는 "러시아 정치 상황은 야권 지도자들을 크렘린궁 바로 앞에서 저격하거나 독살하고 감옥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독살 의혹을 제기했다.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도 카라-무르자 중독 사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카라-무르자는 2015년 5월에도 중독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져 입원한 바 있으며 당시에도 그가 독살 미수를 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학한 카라-무르자는 졸업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야당인 '우파 동맹' 지도자 넴초프의 보좌관으로 일했고 그가 숨진 뒤에는 추모 재단을 이끌어 왔다.

그는 넴초프와 함께 푸틴을 비판하는 시위를 조직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부정·비리 보고서를 공동작성하기도 했다. 넴초프는 2015년 2월 크렘린궁 인근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카라-무르자는 지난 2011년엔 러시아의 인권 탄압에 대한 미국의 제재 법률인 '마그니츠키 법'(2012년 제정) 지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때 하원 의원에 출마하기도 하고 여러 야권 정치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최근엔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前)석유재벌이 설립한 시민 단체 '열린 러시아'를 위해 활동해 왔다.

아내, 세 자녀를 미국에 두고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는 그는 이번에 넴초프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던 중이었다.

아내 예브게니야는 푸틴 대통령을 친구로 표현하며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푸틴은 친구가 아니라 살인자임을 트럼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며 "푸틴은 살인자에 걸맞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서 반정부 인사들이 독살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2006년에는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던 전직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영국에서 방사성 물질 폴로늄 210에 중독돼 사망했다.

영국 당국의 조사결과 러시아 비밀 요원이 리트비넨코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푸틴 대통령의 승인 아래 행해졌다는 분석을 낳았다.

k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