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되살린 문학청년 김승옥의 자전적 기록

입력 2017-02-06 11:45
40년 만에 되살린 문학청년 김승옥의 자전적 기록

1977년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 복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멋모르고 내휘두른 펀치에 상대방이 녹다운됐다'는 표현이 있지만 이 작품에 대한 반향 앞에서 나야말로 그런 자의 어리둥절함을 느껴야 했다. 아마도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가장 순수한 슬픔만을 가지고 쓴 데서 이 작품은, 나 자신은 미처 몰라본 어떤 호소력을 우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갖게 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소설가 김승옥(76)은 1963년 사상계에 '무진기행'을 실었다. 학점 미달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휴학한 뒤 고향에 내려간 작가가 '왜 나는 서울에서 실패하면 꼭 고향을 찾는가'하는 생각에 쓴 작품이다. 음악교사 하인숙이 술자리에서 유행가를 부르는 장면도 작가가 실제 목격한 풍경이다.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순천의 한 고교에 갓 부임한 교사였다고 한다.

작가는 1977년 수필집 '뜬 세상에 살기에'(지식산업사)를 엮으며 '무진기행'을 비롯한 자신의 작품들을 해설했다.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은 고향 집에서 아름다운 황혼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상이 떠올라 세 시간 만에 썼다고 한다. '야행'에 대해서는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우리 국민의 태도에 대해 야유를 한다는 보물찾기 쪽지를 숨겨놓고 소설 언어의 살을 입힌 것"이라며 "모두 단순한 풍속소설 또는 여성 심리소설로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김승옥의 유일한 수필집 '뜬 세상을 살기에'가 40년 만에 복간됐다. 출판사 예담이 당시 편집을 세로쓰기까지 그대로 옮겼고 중질 만화지를 사용해 옛 느낌을 되살렸다. 뒤표지에는 사진작가 강운구가 찍은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이 실렸다. 글들을 새로 배열하고 가로쓰기로 편집한 개정판도 함께 나왔다.

수필집에는 스물한 살에 '생명연습'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하고 김현·최하림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한 열정적 문학청년으로서 작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1962년 신춘문예 당선소감의 일부다. "지난해에 제 고향의 친구 두 명이 자살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서 혼이 났습니다. 아마 허영쯤 되겠습니다만, 늘 남이 해버린 뒤에야 아차 그것은 내가 생각한 것인데 하고 억울해하는 놈입니다."

이 수필집은 당시 지식산업사에서 책을 만들던 최하림 시인이 작가의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서울의 달빛 0장')을 기념하고자 제안해 출간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판본은 작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사장인 윤성근 작가가 녹번동 재개발지역 책더미에서 발견해 소장하던 책을 기증하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첫술에 배부르랴!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는 남의 요구에서가 아닌 스스로 우러나 쓰는 수필도 좀 열심히 써봐야겠다고 생각한다." 1977년 12월 남긴 수필집 후기다. 작가는 개정판 서문에 "개정판 역시 자의가 아닌 '남의 요구'로 이뤄졌다. 나란 사람한테 참 고집스러운 구석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한다"고 썼다. 2권 세트 2만2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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