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무대서 가톨릭 영향력 퇴조…佛·獨선거에 영향은
이코노미스트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서 보수 성향으론 당선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유럽인의 정신세계 뿐 아니라 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가톨릭이 시대변화와 함께 기반을 서서히 상실해가고 있다.
시대변화에 따른 유권자들의 인식이 진보성향으로 바뀌면서 낙태나 동성애 등 사회적 이슈에 있어 기존의 가톨릭 보수성향에 의존해온 정치인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5일 올해 치러지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주요 선거를 통해 '가톨릭 정치 퇴조'의 실상이 드러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은 2차대전 후 유럽의 동질성을 상징하는 정신적 기반이자 파시즘과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에 맞서 유럽을 단결시키는 데 영감을 부여했다.
유럽통합의 초석을 놓은 프랑스의 로베르 슈망, 이탈리아의 알치데 데 가스페리,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등은 모두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신앙심 또는 소명을 바탕으로 서유럽의 분열된 국가를 단합시켰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서도 기독교민주당이라는 정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유럽 정치에서 가톨릭이 주요 정치 이념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이전처럼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정치인들은 유럽에서 이슬람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정신적 모태인 가톨릭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으나 이전처럼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생명 윤리적 이슈들에 대해 이전과 같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낙선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가톨릭을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현실과 타협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프랑스 대선 주자의 한 명인 보수우파 후보 프랑수아 피용은 독실한 가톨릭임을 자처하면서 '철학적으로, 신앙적 견지에서 낙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 분야에 대한 진보적 현행법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이탈리아 총리였던 마테오 렌치도 독실한 가톨릭을 내세우면서도 교회와의 이견 속에 동성결합에 관한 법을 밀어붙였다.
후임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 역시 외교장관 시절부터 교황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가톨릭 교세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유럽연합연구소(EUI)의 종교학자 파스칼레 안니치노는 이를 젠틸로니 총리 개인의 신앙심이라기보다 실용적인 연결고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폴란드도 상황이 비슷하다. 스페인 중도우파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야당 시절 동성결혼법안을 강력 반대했으나 집권 후에는 이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둘 것이라고 물러섰다.
폴란드에서는 지난해 10월 낙태법을 강화하려던 정부의 방침이 시민들의 집단 항의시위에 밀려 철회됐다.
가톨릭의 정치적 영향이 강한 독일 바이에른주도 집권 기사당과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가 이전 같지 않다, 가톨릭인 호르스트 제호퍼 주 총리가 지난 2007년 혼외관계를 통해 자식을 둔 것으로 드러나면서 가톨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EUI의 안니치노는 과거 EU 창설자들의 경우 가톨릭을 자신들의 세계관이자 좌우독재에 대항하는 유일한 대안 이념으로 간주해왔으나, 시대적인 문화, 교육적 변화로 유럽에 이러한 사고를 가진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망했다.
가톨릭을 하나의 정치적 전술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으나 자신들의 지적 지평 내에 신앙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랬다간 선거에 떨어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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