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김훈…한국문학 거장들 현대사를 겨누다

입력 2017-02-05 11:00
김성종·김훈…한국문학 거장들 현대사를 겨누다

장편소설 '계엄령의 밤' '공터에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김성종(76)과 김훈(69)이 나란히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신작 소설을 펴냈다. 동시대 한국문학에 한 획씩 그은 거장들이 서로 다른 장르에서 내보이는 역사인식을 견줘보는 일도 늦겨울 문학 팬들의 쏠쏠한 재미가 될 듯하다.

한국 추리문학의 대부로 꼽히는 김성종은 장편소설 '계엄령의 밤'(새움)에서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거대한 사건들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실존 인물들은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이 바꾼 역사의 흐름은 실제와 일치한다.

소설은 1980년 어느 날 밤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 쫓기는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 안으로 내달리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조각가 서문도는 대통령 암살음모 주도자이자 간첩으로 몰려 현상수배가 떨어진 상태.

군을 동원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 M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계엄령까지 발동해 공포정치를 이어간다. 도피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 서문도는 일본으로 밀항을 결심한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서문도는 왜 대통령 암살 계획을 꾸몄나. 서문도를 휘감은 역사의 비극은 1950년 한국전쟁과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보도연맹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독재정권을 향한 비판이 선명하다. "말 안 듣는 놈들은 탱크로 확 밀어버려요. 백만 명 정도 없애버려도 이 나라는 끄떡없어요." "이건 쥐새끼 이론이란 거야. 쥐새끼가 왜 잘 번식하고 잘 사는지 알아? 절대 잘난 체하고 앞에 나서지 않고 숨어 지내기 때문이야."

작가는 "생각하기도 싫은,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까지 낀 그것을 햇볕에 꺼내는 일이 지금까지 너무도 부족했음을 절감했고, 그래서 이번 작품을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가 현대사를 겨냥한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작가는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50편 넘는 장편소설을 쓰면서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장면들을 적극 끌어들여왔다. 1977년 10권으로 완성한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는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사건, 해방전후 이념대립 등 당시로서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



김훈의 '공터에서'(해냄)는 1994년 문학동네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실으며 등단한 작가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이다. 역사 속 사건들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그 안에서 그저 버텨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마동수(馬東守)는 1979년 12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산외동 산18번지에서 죽었다." 작가 특유의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 사람들 이야기다. 아버지 마동수와 두 아들 마장세·마차세의 삶에는 일제강점과 해방·한국전쟁·베트남전쟁 등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겹친다.

소설에는 자전적 요소가 가미됐다. 작가의 부친 김광주(1910∼1973)는 마동수와 살아온 시대가 거의 겹치고 일제강점기 김구 휘하에서 항일운동을 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신문기자이자 소설가로 일한 김광주는 상하이 남양의과대학을 다녔는데 작중 마동수도 상하이로 건너가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마차세가 군복무를 마친 뒤 복학하는 대신 경제전문 주간지 기자로 취업하는 것처럼 작가 역시 고려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기자로 일했다.

작가와 동시대 인물인 두 아들이 생활을 꾸려나가는 방식의 대비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언뜻 드러난다. 첫째 마장세는 베트남전쟁에서 얻은 상처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남태평양에 자리잡고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사업을 벌인다. 둘째 마장세는 군복무 중 형을 대신해 아버지의 죽음을 수습하고 잡역에도 뛰어들며 생계를 유지하는 소시민의 삶을 산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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