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같은 공연 10번, 나홀로 보고 또 보고…공연장 점령한 '욜로족'
작년 공연예매 10건 중 4건 '나홀로'…한 공연 10번 넘게 본 관객도 4천여명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1.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박수지(가명·35)씨. 7년 전 뮤지컬 배우 박은태가 출연한 뮤지컬 '모차르트'를 보고 이른바 '덕통사고'(뜻밖의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어떤 대상에게 빠져드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를 당했다.
무대 위의 에너지,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에 빠져든 그는 지금도 여가 생활 1순위로 '공연'을 꼽는다.
한 달에 공연에 쓰는 돈은 최대 50만원 수준. 티켓을 예매할 때는 가격보다는 좌석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는 몰입도가 높은 공연장 1~2열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는 같은 공연을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객'이기도 하다. 최근 공연 중인 뮤지컬 '팬텀'은 이미 5~6번 관람했다.
그는 "좋아하는 몇몇 배우의 공연을 주로 반복 관람한다. 배우의 컨디션, 상대 배우의 조합 등에 따라 공연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수집가'처럼 공연을 챙겨보게 된다"고 말했다.
#2. 서울 광화문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민정(가명·31)씨.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는 '혼공족'이다.
그가 좋아하는 장르는 클래식.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라 친구도 많은 편이지만, 또래 친구 대부분이 클래식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혹시 나 때문에 끌려와서 좋아하지도 않는 공연을 보게 될까 봐 공연을 보러 가자고 권유하기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티켓을 대신 사주는 건 내게도 부담이다 보니 그냥 혼자 다니게 된 것 같다. '혼공'이 더 집중도 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공연 전 혼자 커피랑 샌드위치로 식사를 해결하고 일찍 공연장에 입장해 프로그램북 등을 조용히 읽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의 30% 정도를 공연에 쓴다.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은 너무 비싸서 주로 A~B석(2~3층 좌석)을 이용한다.
그는 "각자 힐링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나는 술자리도, 쇼핑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내겐 맛있는 음식과 좋은 음악, 딱 두 가지뿐이라 지불하는 티켓 값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삶에 기쁨을 주는 소비를 하는 '욜로족'(YOLO·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들이 공연장에서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과거 공연은 특별한 날 여럿이 모여 보는 대상으로 통했지만, 홀로 관람하거나 반복 관람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혼공족'과 '회전문 관객'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5일 국내 최대 공연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전체 구매 건수(뮤지컬·연극·콘서트·오페라·무용 등)에서 1인 1매 티켓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11%에서 작년 43%까지 늘어났다.
작년 티켓 예매 10건 중 4건 이상은 '나홀로 관람'인 셈이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일부 아이돌 콘서트에서 1인 1장으로 구매를 제한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지만, 공연장을 홀로 찾는 문화 자체가 확산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 전체 구매 건수 중 1인1매 티켓이 차지한 비중 (자료제공=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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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1인1매 티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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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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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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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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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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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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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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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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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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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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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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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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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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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같은 뮤지컬 작품을 10회 넘게 본 '회전문 관객'도 2014년 2천972명에서 작년 3천197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5~10회 관람한 관객도 1만2천458명에서 1만4천932명, 2~4회 관람한 관객은 10만4천759명에서 12만2천17명으로 증가했다.
연극 장르에서도 11회 이상 관람객(740명→1천55명), 5~10회 관람객(2천931명→3천829명), 2~4회 관람객(2만6천491명→3만5천733명)이 모두 늘어났다.
◇ 뮤지컬·연극을 중복 관람한 예매자 수 (자료제공=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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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연극(명)│뮤지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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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4회 │26,491 │104,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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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회│2,931 │12,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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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회 이상 │740 │2,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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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4회 │33,215 │12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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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회│3,319 │12,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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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회 이상 │850 │2,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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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4회 │35,733 │12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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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회│3,829 │14,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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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회 이상 │1,055 │3,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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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이 같은 '회전문 관람'이나 '혼공족'은 이른바 몇몇 '덕후'(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의 관람 행태로 치부됐지만, 점점 공연계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이들을 대하는 공연계 대접도 달라졌다. 다양한 혜택과 이벤트로 특별 관리를 해주는 분위기다.
뮤지컬 '아이다'는 2월 1~10일 공연 티켓을 1매 예매한 관람객에게 전시회 티켓, 에스프레소 싱글잔, 과일주스, 남성 로션 등을 선물한다.
삼성카드도 오는 2월 18일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열리는 '삼성카드 스테이지'에 '혼공석'을 마련했다.
뮤지컬 '위키드'를 제작한 설앤컴퍼니는 작품을 2회 이상 관람한 관객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비공개 카페인 '오지안'을 개설한 바 있고, 뮤지컬 '원스'를 올렸던 신시컴퍼니도 4회 이상 공연을 본 관객들만을 대상으로 미니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다관람, 혼공 문화는 한국 관람객의 독특한 특성"이라며 "팬덤 문화, 비싼 티켓 가격, 공연을 나홀로 만끽하려는 성향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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