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마시면 때려…그래도 착해" 학대 자식 감싸는 노인들
작년 충북서 노인학대 194건…1년전보다 16.1%↑
친족 학대가 73.9% 차지…아들 36%로 가장 많아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는 성격이지만 평소에는 얼마나 나한테 잘하고 착한데. 그놈의 술이 문제지. 처벌? 자식한테 그러면 안 되지. 그런 거 원하지 않아"
5년 넘도록 정서적·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아온 백발의 노인 A(73·여·청주시)씨는 끝까지 아들 B(36)씨를 두둔했다.
아들은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이일 저일 전전하던 아들은 젊은 시절부터 스트레스를 술로 풀기 시작했다.
마흔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늦둥이로 얻은 자식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 A씨는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려도 B씨에게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갑게 구는 아들이었기에 언젠가는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아왔다.
하지만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고, 술만 마시면 주먹부터 나가는 아들은 어느 때부터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돼 있었다.
보다 못한 B씨의 형은 결국, 더 이상은 동생과 함께 살 수 없다며 노인복지전문기관에 신고했다.
A씨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일주일에서 열흘까지 밥도 안 먹고 몸을 못 가눌 때까지 줄곧 술만 마신다"며 "술이 떨어지면 술을 사 오라고 욕을 하면서 때리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또 괜찮아진다"고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자식이 안쓰럽다며 노인복지전문기관 지원으로 알코올 전문기관에서 치료를 받던 아들 B씨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다.
A씨처럼 자식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는 노인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3일 충북도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학대로 의심돼 신고된 건수는 모두 589건이었다.
이 가운데 실제 노인학대로 확인된 건수는 194건으로, 2015년 167건보다 16.1%(27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에도 충북에서 166건의 학대 사례가 확인되는 등 매년 증가 추세다.
학대를 가한 사람은 대부분이 친족이었다. 전체 학대 행위자 중 73.9%가 친족이었고 직업은 무직이 55%로 가장 많았다.
확인된 학대 행위자는 아들이 36%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배우자 22.8%, 자기학대 11.4%, 딸 7.3%, 손자녀 2.7%, 친척 1.8%, 기타 14.6% 순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정서적 학대가 59.8%, 신체적 학대 48.4%, 방임 28.3%, 유기 0.9% 등이었다.
장소별로는 노인이 우선 보호돼야 하는 '가정'에서가 91%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도 매해 노인학대 사례는 줄지 않고 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노인 학대는 2006년 2천274건에서 2015년 3천818건으로 10년 사이 67.9%나 늘었다.
최근 5년 통계를 살펴보면 2011년 3천441건, 2012년 3천424건, 2013년 3천520건, 2014년 3천532건으로 끔찍한 노인학대가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노인학대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올해 6월 15일을 '노인학대 예방의 날'로 신규 지정, 운영해 국민 인식을 제고하겠다는 방침을 지난해 세웠다.
또 지난해 12월 30일 노인복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노인학대 범죄자의 노인 관련 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노인학대 상습범과 노인복지시설 종사자의 학대 행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
충북도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노인 학대는 대부분 가정 내에서 친족이 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자식들 문제라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숨어있는 피해자를 찾아내 바로잡기 위해 관계기관이나 지자체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vodcas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