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보름] '극우' 배넌 막후 실세 부상, 사위 쿠슈너 '잠행'

입력 2017-02-03 07:00
수정 2017-02-03 07:10
[트럼프 취임 보름] '극우' 배넌 막후 실세 부상, 사위 쿠슈너 '잠행'

배넌, 전세계 들쑤신 '반이민' 행정명령 주도…초유의 NSC 상임위원 등극

배넌·쿠슈너, '미니 싱크탱크' 출범…언제까지 호흡 맞출까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이슬람권 7개 국가의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하자, 주요 국제공항마다 입국 거절과 탑승 거부 사태로 혼란이 빚어졌다.

이른바 '무슬림 입국 금지'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랜드마크 공약이었다.



그러나 워낙 반론이 많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전광석화처럼 행정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언론이 (내 발언을) 왜곡한 것"이라며 후보 때 내뱉은 강경 발언을 거둬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초강경 노선으로 국정의 방향타를 잡게 된 데는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취임 열흘만인 지난달 30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스티브 배넌이 미국 대통령인가?"라는 제목의 사실을 실을 만큼, 배넌은 막후 실세로서 트럼프 정부를 호령하고 있다.

'싸움닭' 배넌은 지난해 8월 트럼프 후보가 이슬람계 전몰 미군의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최고경영자(CEO)라는 좌장 타이틀을 달고 트럼프 캠프에 입성했다.

'극우' 성향 인터넷매체인 브레이트바트 창립자인 그는 백인 중산·서민층을 결집하는 일관된 전략을 구사해,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당선 후 첫 인선에서 대외직책상 우위인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에 앞서 '정치 참모'인 배넌의 이름을 거명하자, 워싱턴포스트(WP)는 배넌이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일찌감치 전망했다.

실제로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한 신뢰를 등에 업고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지만,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온건파와 가까운 프리버스 비서실장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배넌을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으로 임명하며 날개를 달아줬다. 오히려 댄 코츠 국가안보국(DNI) 국장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은 NSC 상임위원에서 배제됐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절친' 칼 로브 고문을 NSC에는 참석시키지 않았다"며 배넌의 백악관 내 위상을 가늠케 했다.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배넌의 작품이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배넌이 "기독교가 죽고 있어 이슬람이 뜨는 것",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등 브레이트바트 운영 시절부터 종교 차별적인 시각을 여과 없이 드러낸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내 공공연한 실세는 단연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자신에게 보고되는 국가기밀 정보 '일일 브리핑'을 사위인 쿠슈너도 받아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당이 반발했지만 쿠슈너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쿠슈너는 작년 11월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면담을 막후에서 주선하고 회담에도 참석하는 등 왕성히 활약했다.

내각을 비롯한 주요 인선에도 간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히려 정부 출범 후에는 눈에 띌만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NYT는 '쿠슈너는 어디에 있나'라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쿠슈너 사랑'이 식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아직 없다.

현재까지 배넌과 쿠슈너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동지' 역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정책 자문 조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백악관 내 미니 싱크탱크'로 불리는 전략선도단(SIG)을 출범했다. 여기에는 대내외 분야별 정책 분석가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인력의 20~30%는 외교와 안보 등 대외 정책 분야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배넌과 쿠슈너가 국내뿐 아니라 대외 정책 분야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렉스 틸러슨 국무, 제임스 매티스 국방, 존 켈리 국토안보 장관 등 외교·안보 분야 세 장관이 핵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정부 관리들과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보도했다.

그러나 앞으로 배넌과 쿠슈너가 언제까지 호흡을 맞춰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극우 인종주의 성향에 초강경 일방통행을 주저하지 않는 배넌과 온건한 합리주의자로 알려진 쿠슈너는 물과 기름만큼이나 섞이기 어려운 조합이라는 분석에서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이든, 선거든, 핵심 인사들을 라이벌로 만들어 경쟁시키는 용인술로 유명하다는 점도 둘의 관계를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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