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보름] 이중삼중 장벽…안보-통상 '지각변동'

입력 2017-02-03 07:00
수정 2017-02-03 07:09
[트럼프 취임 보름] 이중삼중 장벽…안보-통상 '지각변동'

장벽건설-反이민 행정명령으로 기존질서 요동…미-유럽 동맹 파열음

나프타 재협상-TPP탈퇴로 무역질서 깨고 전방위 통화전쟁 공개 선포

한미동맹 공조천명 속 방위비 분담금 변수로…한미FTA도 타깃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갓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안보와 무역을 필두로 전 분야에 걸쳐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 정책을 쏟아내면서 전 세계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이민자를 포용했던 미국이 입장을 180도 바꿔 이중삼중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새로운 '고립과 분열의 시대'를 부추기면서 글로벌 지각변동이 시작된 형국이다.



◇美 장벽쌓기에 전 세계 패닉…나토-EU 때리고 러시아와는 해빙무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대선 안보공약을 밀어붙이고 있다.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멕시코 장벽건설은 물론이고 설마 했던 테러 위험국 국민 입국 금지조치까지 착착 진행하고 있다. 빗장을 이중삼중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특히 이라크 등 7개 이슬람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 90일간 중단 및 난민의 미국 입국 120일간 금지에 관한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규탄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라며 강경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구축해 온 전후 동맹체제마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당장 전통적 동맹인 영국과 독일, 호주 등도 반이민 행정명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동맹과 우방 정상들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태도도 동맹질서 균열에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멕시코가) '나쁜 놈들'을 막지 못하면 미군을 내려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전날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의 전날 통화에서는 양국이 지난해 11월 체결한 난민 교환협정을 '멍청한 협상'(dumb deal)이라고 일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맹과의 이런 갈등은 지구촌 최대 위협인 '이슬람국가'(IS) 격퇴 연합전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IS 격퇴전의 최일선에 있는 이라크에서는 미국의 자국인 입국 금지조치에 맞서 미국인의 이라크 입국을 금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외국인 전문직 취업비자(H-1B)까지 제한하는 행정명령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도 직접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방의 안보 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 등 동맹도 직접 공격하고 있다.

동맹의 방위비 분담률을 높이겠다는 여러 복합적 계산에 따른 행보이지만, 해당 동맹들이 반발하면서 내부 균열만 커지는 양상이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의 분열을 부추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아 그를 'EU의 위협'으로까지 규정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과 멀어지면서 적국인 러시아와는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적대적 관계를 뛰어넘어 '실리'를 중심으로 외교관계의 틀을 새로 짜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밖에 '하나의 중국' 정책 폐기를 운운하면서 중국과의 긴장수위를 높이고 있고,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국가 해법' 대신 이스라엘 중시 정책을 노골화하면서 중동 정세도 흔들어 놓고 있다. 또 이란 핵합의 폐기, 유엔 분담금 축소 등도 모색하고 있다.





◇보호무역 앞세워 나프타 재협상-TPP 탈퇴에 통화전쟁까지

트럼프 정부 통상정책의 핵심 기조는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다. 나프타 재협상, TPP 탈퇴, '30일 후 해지' 가능한 양자협정 추진 등도 이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보호무역 기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캐나다-멕시코 간의 나프타 협정은 재협상하고, 미국과 일본을 포함해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선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중 미국의 TPP 탈퇴는 역내 무역질서뿐 아니라 안보 질서에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TPP는 아·태 지역의 최대 경제통합체로, 미국 입장에서는 단순한 다자무역협정을 넘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응하는 성격을 띠는 등 역내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신(新) 외교·안보 틀'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發) 통화전쟁의 서막도 열린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같은 날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과 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동맹인 일본과 독일까지 싸잡아 환율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한국도 언제든 타깃 가능성

한국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직공'에서는 한 발짝 비켜나 있는 상태다.

지난해 대선 때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으나 대선 승리 이후 아직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우려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한미FTA 모두 언제든 양국 간 갈등 현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미FTA가 다음 타깃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도 한반도 정세를 흔들 요소로 꼽힌다. 현재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원론적이지만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si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