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수치, 측근 변호사 피살에 침묵…무슬림이라서?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을 방관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 아웅산 수치가 오랜 동지이자 법률자문역인 무슬림 출신 변호사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다.
2일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수치는 자신의 측근이자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법률자문역인 코 니(65) 변호사가 총격을 받아 살해된 이후 지금까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수치는 그동안 무슬림인 코 니 변호사의 피살사건에 대해 어떠한 성명도 내지 않았고, 심지어 수만 명의 애도 인파로 북적였던 지난달 30일 장례식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평소 '수치의 입' 역할을 해온 관영 언론도 코 니 변호사의 피살사건을 축소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
미얀마 관영 일간 '더 글로벌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는 피살사건 발생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자에서 1면을 수치의 벚나무 심기 행사 사진과 기사로 채웠고 피살사건 기사는 3면 하단에 배치했다.
같은 날 미얀마의 주요 일간지들이 피살사건을 1면에 대서특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이 관영 일간지는 처음에 피살사건을 1면에 넣었다가 윗선의 지시로 밤늦게 재편집 작업을 한 사실이 드러나 미얀마 언론인들과 편집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독립언론인 이라와디가 전했다.
코 니는 이슬람교도 출신 변호사로 수치에 오랫동안 법률 자문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헌법 전문가인 코 니는 여당인 NLD 법률자문역을 맡아 수치의 대통령 출마를 막았던 군부제정 헌법 개정을 추진해왔고, 가족의 국적 문제로 대통령 선거 출마가 좌절된 수치를 위해 '국가 자문역'이라는 초헌법적인 지위를 만들어 '대통령 위의 통치'를 가능케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코 니 변호사의 죽음에 수치가 굳게 입을 다물자 유가족들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피살 현장을 목격한 인 느웨 카인은 "장례식에 많은 인파가 모였는데 수치 여사가 꽃을 보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전화를 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는 죽었고 살해당했다. 그는 추락한 영웅이지만, 적어도 진실을 알 권리는 있다"며 이번 살인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수치가 이슬람교도인 코 니 변호사의 종교적 배경과 소수종교 차별을 비판 전력 때문에 다수인 불교도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