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입법-행정-사법 '3대축' 모두 보수로…이념지형 '우향우'
트럼프, 보수성향 닐 고서치 판사 대법관 후보로 공식 지명
대법원 보수 5명-진보 4명으로…민주 반대로 인준 진통 예고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진보 색채를 보였던 미국 사회의 이념지형이 확실하게 '우향우'로 돌아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공석 중인 대법관 후보로 보수성향의 닐 고서치 콜로라도 주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한 데 따른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향후 상원 인준과정에서 제동을 걸면서 시간에 걸리겠지만 결국 인준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공화 '3부' 차례로 장악…보수우위 대법원, 보수성향 판결 예고
고서치 지명자가 미 상원 인준절차를 거쳐 대법관에 공식으로 임명되면 입법과 사법, 행정 3부(部)의 권력은 모두 보수로 넘어가게 된다. 공화당 주도의 이른바 '통합정부'(the unified government)가 구축되는 셈이다.
입법부 권력은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민주) 전 대통령 집권 기간인 2010년 중간선거 때 하원, 2014년 중간선거 때 상원을 각각 빼앗아오면서 일찌감치 장악했고, 행정부 권력도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8년 만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마지막 남은 사법부도 이번 고서치 인선으로 이념구도가 5대 4의 보수우위로 바뀌게 됐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가 4명씩 양분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앨리토, 앤서니 캐네디 등 4명은 보수 성향,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등 4명은 진보 성향으로 각각 분류된다.
원래 정원이 9명이지만 지난해 2월 '보수파의 거두'로 불려온 앤터닌 스캘리아 전 대법관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직 후임을 채우지 못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시 중도에 가까운 진보 성향의 메릭 갈랜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했으나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에다 대선국면까지 맞물려 결국 상원 인준을 관철하지 못한 채 퇴임했다.
고서치 지명자가 대법원에 공식 합류하면 이후 대법원의 판결은 확연히 보수 색채를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고서치 판사는 '헌법 원전주의'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보수성향의 인물로, 스캘리아 전 대법관의 '이념적 바통'을 이어받을 적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대법원의 보수 판결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트럼프 시대의 대법원이 앞으로 오바마 정부 8년간의 진보 기조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갈 수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오바마 정부 아래의 대법원은 스캘리아 전 대법관이 사망하기 직전까지 5대 4로 보수우위였으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진보 어젠다를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진보 성향의 굵직굵직한 판결을 여러 건 쏟아냈다.
2015년 6월 말 대법원이 내린 '오바마케어' 합법화,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대표적이다.
오바마케어는 오바마 정부의 핵심 건강보험정책으로, 대법원은 공화당이 낸 위헌 소송에서 예상을 깨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또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강력한 성(性) 소수자 보호 정책 드라이브 속에 논란이 많았던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합법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진보적 판결은 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거센 논란이 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대한 주(州) 정부와 지방 정부의 위헌 소송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 사안이 대법원으로까지 올라올 경우 합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대법관 2명이 워낙 고령이라 향후 대법원의 우향우 강도가 더욱 세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의 나이는 각각 83세, 78세로 고령이다. 또 보수성향이지만 몇몇 사회 문제에서 진보적 의견을 낸 앤터니 케네디 대법관도 80세로 나이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 사망이나 은퇴로 대법관 공석이 더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 뉴욕대 배리 프리드먼 법학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앞으로 최악의 경우 '보수 7-진보 2'의 대법원이 꾸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 '필리버스터'로 '보복작전' 구사할 듯…인준 장기화 가능성
고서치 지명자의 상원 인준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장 척 슈머(뉴욕)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고서치 판사 지명에 대해 "그의 이력으로 볼 때 심각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론 와이든(오리건) 민주당 상원의원도 성명을 통해 "고서치 판사의 대법관 지명은 '미국은 헌법 자유에 대한 기본권리가 있다'는 개념에서 놀라울 정도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현재 내부적으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통해 대법관 인준 표결을 저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이 지난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갈랜드 판사를 무산시킨 것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필리버스터는 의원 누구나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상원에서만 허용된다.
필리버스터를 종결하려면 전체 100명인 상원의원 중에서 60명이 동의해야 하는데 현재 52석인 공화당만으로는 이를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필리버스터 종결 요건을 '찬성 60표'에서 '단순 과반'(51표)으로 낮춘 전례가 있긴 하지만 '키'를 쥔 미치 매코널(켄터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규칙 변경 요구에도 '원칙'을 강조하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27일 의회 전문매체 '더 힐' 인터뷰에서 "상원의 규칙은 상원의 문제다. 기본적으로 상원의 규칙은 영원한 것이며, 또한 현행 규칙은 올해 초 의회 개원 당시에 채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타협의 기술 또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고서치 지명자 인준은 예상보다 길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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