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100년 동맹 파열음…EU 투스크 "트럼프는 EU의 위협"(종합)
투스크 "트럼프 정책·中 영토주장·러 공격이 EU 미래 위협"
"굴복 안 된다…美 친구들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상기시켜야"
(런던 제네바=연합뉴스) 황정우 이광철 특파원 =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EU 미래의 불확실성을 부추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격한 비판의 메시지를 토해냈다.
투스크 의장은 2월 3일 몰타에서 EU 미래를 논의하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걱정스러운 선언들'을 중국, 러시아의 침략적 행보와 함께 유럽의 미래를 매우 불확실하게 하는 최대 글로벌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이 31일(현지시간) 전했다.
투스크는 EU가 직면한 대외 위협과 관련해 "영토주장이, 특히 해양에서 점점 강력해지는 중국, 우크라이나와 이웃 국들을 향한 러시아의 공격적인 정책,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중심에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전쟁과 테러, 그리고 새로운 미국 행정부의 우려스러운 선언들이 우리의 미래를 매우 불확실하게 만든다"고 오랜 동맹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를 중국 및 러시아와 같은 위협요소로 올렸다.
이어 "점점 다극화한 외부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이토록 수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반(反) 유러피언 또는 유럽회의론자가 되고 있다"며 "특히 지난 70년간의 미국 외교정책을 의문에 빠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새 정부가 들어선 워싱턴의 변화는 EU를 어려움에 빠뜨린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부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영국 일간 더타임스, 독일 신문 빌트 등과 인터뷰에서 유럽 내 EU 추가 이탈을 예견하는 등 EU의 분열을 부추기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발언을 해 EU 정상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투스크는 EU 내부 위협으로 "반(反) EU, 국수주의, 유럽 내 점증하는 외국인혐오 정서 등과 연관된" 것들을 꼽고 "국가 이기주의가 점점 더 매력적인 통합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투스크는 긴장과 대치로 가득한 세계에서 유럽인들의 용기와 결의, 정치적 유대를 호소했다.
그는 "EU의 분열은 개별 국가에 신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완전한 자주권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만 비로소 독립할 수 있다"며 "EU에서 이탈하게 되면 미국, 러시아, 중국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투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겨냥해 "EU는 우리 시민들과 기업들을 보호하고 자유무역은 공정 무역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외부에 개방된 무역강대국으로서 우리의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대서양 양안 간 유대를 약화하거나 무효로 하려는 이들에게 굴복해선 안 된다. 대서양 양안 간 유대 없이는 국제 질서와 평화는 생존하기 어렵다"며 트럼프의 고립주의에 맞설 것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 미국 친구들에게 그들의 신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상기시켜줘야 한다"는 말로 서한을 마무리했다.
이번 EU 정상회의에선 반(反) 이민 행정명령,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보호무역주의 행보로 세계 각국과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대응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소 신중한 완곡한 수사(修辭)를 고집해온 점에 투스크 의장이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EU의 위협'으로까지 표현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올해는 미국이 세계 제1차대전에 참전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투스크 의장의 서한은 한 세기를 지속해온 대서양 양편 미국과 유럽의 굳건한 동맹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파열음을 내는 징후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하다.
앞서 유럽의회 브렉시트 협상위원인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전 총리도 전날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서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EU를 악화하려는 유럽 극우세력에 동조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이슬람 급진주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EU의 3대 위협으로 지목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오늘날 미국 내 EU의 '친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적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jungw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