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공백 헛되지 않았다'…세련된 범죄액션 '조작된 도시'
'웰컴 투 동막골' 박광현 감독의 신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조작된 도시'는 박광현 감독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웰컴 투 동막골'(2005)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지만, 오랜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젊고 세련된 감각의 범죄오락 액션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소재부터 연출, 연기, 액션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조작된 도시'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던 백수 권유(지창욱)가 한순간에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게임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누명을 벗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보고 단순히 게임 영화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임이나 만화 같은 설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이야기는 어디로 뻗어 나갈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다.
영화는 주인공 권유가 활약하는 대규모 전투 장면으로 문을 연다. 곧이어 PC방 의자에 앉아있는 권유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전투 장면은 게임을 재연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 이후부터는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휘몰아치는 전개가 펼쳐진다. 권유는 PC방 옆자리에 휴대전화를 놓고 간 한 여성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전화기를 두고 나온다. 그가 그녀의 집 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16초.
권유는 그러나 이튿날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흉악범으로 몰리고, 경찰에 체포된다. 살인에 사용된 흉기, 그 위에 묻은 지문 등 주변에는 온통 그가 살인범이라는 증거뿐이다.
속전속결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흉악범만 수감된 교도소에 갇히고, 그곳에서 모진 고초를 당한다.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던 그의 어머니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자, 그는 결국 탈옥을 감행한다.
이후 그를 게임 속에서 '대장'이라고 부르던 게임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장의 누명을 벗길 작전을 준비한다.
게임 멤버들은 모두 비주류다. 권유는 전직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지만, PC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신세. 더구나 지금은 살인 누명을 쓴 도망자다.
'털보형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여울(심은경)은 천재 해커지만, 마주 앉은 사람과도 휴대전화로만 대화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한 은둔형 외톨이다.
이외에도 영화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영화계 말단 스태프, 지방대 지리학과 교수 등이 게임 멤버다. 언뜻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 보이는 이들이 자신의 주특기를 앞세워 팀플레이를 펼치며 화끈한 복수극에 성공할 때 쾌감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박 감독은 캐릭터에 조금씩 반전을 숨겨놓음으로써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예컨대 패스트푸드를 입에 달고 살 것 같은 해커 여울이 매번 푸짐한 밥상을 차려 엄청난 양의 밥을 먹는다는 식이다.
주연을 맡은 지창욱은 스크린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강도 높은 액션은 물론 억울함, 분노, 슬픔 등 감정 연기를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며 캐릭터의 매력을 높였다. 각종 영화에서 코믹한 감초 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오정세나 김상호의 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액션신에서도 차별화를 꾀한 흔적이 역력하다. 자동차 추격신을 선보이는데, 자동차가 뒤로 가면서 추격전을 벌이는 식이다.
이 모든 범죄를 조작한 '빅 브러더'가 방대한 데이터를 보관한 최첨단 방에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모습 등 국내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시각적 놀라움을 주는 장면도 제법 된다.
박 감독은 31일 열린 시사회 직후 간담회에서 "공백기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서 "기존 범죄 액션 영화와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의 영웅이 현실에서 어떻게 비칠 수 있을까 떠올렸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어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도 (게임처럼) 비현실적인 사건이 많지 않으냐"며 "따라서 이런 시도가 요즘 시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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