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총리, 트럼프 反이민 행정명령에 '침묵' 빈축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켜 빈축을 사고 있다.
31일 말레이시아키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집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지 나흘이 지나도록 관련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무슬림 인권 문제를 비롯한 국제적 이슈에 거의 즉각적으로 입장을 내놓던 평소 행보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현지 언론은 지적했다.
나집 총리는 작년 말 미얀마내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청소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내정불간섭 원칙까지 어겨가며 미얀마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이달 19일에는 57개 무슬림 국가로 구성된 이슬람협력기구(OIC) 특별회의까지 소집해 미얀마 측과 외교갈등을 빚었다.
말레이시아 야권과 시민사회는 나집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말레이시아에선 인구의 과반수(61.3%)를 차지하는 이슬람계 주민의 반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들은 내달 3일 주말레이시아 미국 대사관 앞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벌일 계획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나집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직접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싱크탱크 민주경제연구소(IDEAS)의 완 사이풀 완 잔 소장도 "외교정책은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면서 "(국가 수반의) 성명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테러 위험국으로 간주한 7개 무슬림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최소 90일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나집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치는 등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그의 집무실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사인한 사진이 걸려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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