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400일 달린 박한철號 헌재…우리 사회에 다양한 충격파
통진당 해산부터 간통죄 폐지까지…현대사 격랑 속 '5기 재판부' 작품
야간시위 허용 등 국민 기본권 강화…'세계 속 헌재' 국제화도 진일보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외침에 국회와 대통령 측 변호사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동시에 자주색 법복 차림의 헌법재판관 9명이 열을 맞춰 심판정에 들어섰다. 맨 앞의 박한철(64·사법연수원 13기) 헌법재판소 소장은 정중앙 재판장 자리에 착석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터지는 동안 그는 긴장한 듯 목을 가다듬고 안경을 고쳐 썼다.
"재판소장인 제 임기는 6일 뒤인 31일 만료하게 됩니다. 저로서는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변론 절차가 됐습니다…." 박 소장은 말을 잇다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찰나의 순간, 한 줄기 아쉬움의 빛이 그의 얼굴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듯했다.
검찰 출신 헌법재판관이던 그가 2013년 4월 12일 5대 헌재 소장으로 임명됐을 때 법조계에선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소장 자리는 늘 재판 경험이 많은 대법관 출신이 맡아왔다.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일선 지검장을 역임한 그는 대척점에 있었다. 헌재와 인연도 부장검사급 시절 2년간 헌법연구관 파견 근무뿐이었다.
그러나 박 소장이 이끄는 '5기 재판부'는 지난 1천400일간 헌재 역사상 어느 재판부보다도 더 크고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 처리했다. 통상적인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권한쟁의심판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뒤흔든 정당해산·탄핵심판을 모두 경험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31일 "박 소장이 그만큼 다사다난한 시기에 헌재를 이끌었단 의미"라고 말했다.
◇ 정당해산부터 탄핵심판 심리까지…대한민국에 충격파
5기 재판부를 대표하는 사건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이 우선 꼽힌다. 2013년 11월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청구한 이 사건은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 심판이자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헌재는 409일만인 2014년 12월 "통진당이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며 재판관 8 대 1 의견으로 해산 결정을 내렸다. 또 지역구·비례대표 의원 5명의 의원직도 박탈하며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2015년 2월 헌재는 62년 만에 간통죄를 폐지하며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간 네 번의 '합헌' 결정이 있었지만 5기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형벌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다"며 처벌법을 폐기했고 전통적 부부 윤리는 거대한 변화에 맞닥뜨렸다.
2014년 10월 재판부는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를 획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선거구의 최대·최소 인구 편차는 기존 3:1 이하에서 2:1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표심을 쫓는 정치권에선 구획 재구성을 놓고 일대 쟁투가 벌어졌고 2016년 4·13 총선은 새 선거구획을 적용한 첫 선거가 됐다.
그해 3월엔 일몰 후 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을 전격적으로 한정 위헌 판단했다. 재판부는 "낮이 짧은 동절기 평일에는 직장인이나 학생이 사실상 시위에 참여할 수 없게 돼 집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야간시위에 길을 터줬다.
지난해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주장한 '청탁금지법'에 언론인을 포함하는 것이 합헌이라고 결정해 법시행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 안에선 정치·사회 기본권 확대…밖에선 '亞인권재판소' 주창
박 소장의 헌재는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구 공직선거법을 위헌 결정으로 없앴다. 국내 거소가 없는 재외국민과 유기징역을 사는 수형자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하는 등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판결을 내놨다. 자발적 성매매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으로 보고, 아동·청소년 성범죄자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을 10년간 금지한 법은 위헌으로 판단하는 등 새로운 성문화 기준도 제시했다.
절도 재범자를 징역 3년 이상으로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장발장법'을 없애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최대 근로계약 기간을 2년으로 한정한 결론도 내놓았다.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청소년 야간 게임이용을 막는 '셧다운제'를 지키는 등 실생활과 밀접한 결정 역시 많았다.
5기 재판부는 2014년 9월 서울에서 세계헌법재판회의를 개최하는 등 헌재의 국제화도 상당 부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연구사무국을 국내에 유치한 것은 눈에 띄는 성과다.
특히 박 소장은 국내외 헌법기관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시아 인권재판소' 설립을 주창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 논문에서 "아시아 인권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같은 지난 세기 아시아에서 발생했던 여러 인권 유린 행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해 주목받았다.
◇ "늦춰진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박 소장은 25일 자신의 마지막 재판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서 후임자 없이 퇴임하는 상황을 '헌법적 비상 상황'이라 지적하면서 "10년 이상 후속 입법 조치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국회와 정치권은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런 '작심 발언'은 자신 역시 이강국 전 소장의 임기 만료 후 81일간 빚어진 공백을 수습하며 취임한 경험과 맞닿아 있다. 후임 소장으로 지명된 이동흡 전 재판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낙마해 현직 재판관 중 한 명이던 그가 소장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늦춰진 정의는 더 이상 정의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직무정지로 자신도 소장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둔 채 떠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 때문에 박 소장이 "다음 후임자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까지 탄핵심판 최종 결론이 선고돼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자신의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3월 13일 이전에 탄핵소추가 기각될 경우 박 대통령이 곧바로 직무에 복귀해 차기 소장을 지명할 수 있다. 탄핵이 인용되면 차기 대선이 열리는 4월 말∼5월 초엔 다음 대통령이 결정되며, 늦어도 5월 중순에는 신임 소장이 업무를 이어받게 된다.
박 소장의 퇴임 후엔 이정미 재판관이 임시 권한대행을 맡는다. 또 일주일 내에 재판관 회의에서 정식 권한대행을 선출해 탄핵심판 마무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안긴다.
비록 최종 결론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박 소장은 퇴임 전날인 30일에도 출근해 업무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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