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점 못찾은 潘-孫 회동…제3지대發 정계개편론 '시계 흐림'
孫, 潘에 '정치적 입장' 정리 요구…'보수와 선긋기' 촉구
범여 '제3지대'·비문+야권 '빅텐트'…각자 활로 찾나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홍지인 기자 = 제3지대 정계개편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이 27일 마주 앉았다.
범여권의 유력주자인 반 전 총장과 야권의 대표적 개헌론자인 손 의장의 이날 단독회동은 그 자체로 시의성과 정치적 함의가 컸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을 뺀 정치권의 제 세력이 개헌을 고리로 새판짜기를 꾀할 수 있는 지를 가늠해보는 일종의 시금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번 회동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는 원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개헌을 추동하는 세력의 '정치적 정체성'을 둘러싸고 이견이 나온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야권에 정체성을 둔 손 의장이 반 전총장의 '개혁성'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와 관련, 손 의장은 반 전 총장에게 "보수적인 정치 세력에 기반을 둔 구상에 동의할 수 없다"며 "좀 더 분명한 정치적인 입장을 세워서 개혁적 정권교체의 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꿔말해 반 전 총장이 보수세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야권에 정치적 정체성을 두지 않을 경우 연대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에 따라 반 전 총장이 구상 중인 대선 전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구상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선 전 개헌을 고리로 한 연대에 여권 개헌론자인 정의화·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과는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제3지대 논의를 야권으로 확산시키는데 있어 첫 관문 격인 손 의장에서부터 순조롭지 않은 흐름이 연출된 것이다.
손 의장은 반 전 총장을 둘러싼 보좌진이 보수 성향의 인사 일색으로 구성된 점을 들어 반 전 총장의 개헌 및 공동정부 구성 제안에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반 전 총장의 보좌진은 외교관과 이명박 정부 인사 위주로 구성돼 정치성향이 편향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손 의장은 이날 저녁 채널A 인터뷰에서도 "보수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며 "반 전 총장이 개혁 세력을 바탕으로 정치하면 같이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이 보수세력에 얹혀서 정치한다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손 의장은 특히 반 총장 본인의 정치적 입장이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반 전 총장 스스로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칭할 정도로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손 의장은 채널A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은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뜨거운 얼음과 같은 말을 썼다"며 "정치적 노선, 정책 이런 것을 좀 더 분명히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손 의장의 이런 반응은 전날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반 전 총장과의 연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
손 의장과 박 전 대표는 전날 저녁 비공개 회동에서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연대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현시점에서 반 전 총장과의 연대는 어렵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박 전 대표는 전날 밤 회동 후 페이스북에 "우리는 반 총장 귀국 후 어제까지의 여러 발언으로 볼 때 함께 할 수 없고 (경제민주화 총리) 운운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밝혔다. 분명한 입장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며 반 전 총장과의 연대에 선을 그었다.
이날 반 전 총장에게 내놓은 손 의장의 부정적 답변으로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정치권 대연합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범여권은 반 전 총장과 바른정당을 축으로 한 '제3지대' 연합을, 야권은 국민의당·국민주권개혁회의·민주당 내 비문 그룹 등이 주축이 된 '빅텐트' 연대를 각자 모색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처럼 정치상황에 따라 정계개편 논의는 얼마든지 가변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박 대표와 손 의장의 부정적 반응은 제3지대 정계개편 논의에 있어 범여권 주자인 반 전 총장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싸움의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현시점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정계개편을 추동하는 세력들이 저마다 동상이몽식의 입장차를 보이고 있지만, 문 전 대표가 일방적으로 대세론을 형성하는 판세가 고착화될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제3지대'와 '빅텐트'를 통합하는 거대 정치연대가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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