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가 취객 무차별 폭행 후 대로에 유기…"유기치사"
유기 후 3차례 차에 치여 사망…차로 친 운전자 3명 중 2명은 '뺑소니'
(안산=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경기 안산의 한 택시기사가 20대 취객을 마구 폭행한 뒤 대로변에 버리고 가 결국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취객을 잇달아 친 차량 3대 중 사고를 신고한 운전자는 단 1명뿐이었고, 나머지 2명은 사고 후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취객을 마구 폭행하고 도로에 버려 사고로 숨지게 한 혐의(폭행 및 유기치사)로 택시기사 이모(43)씨를 형사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또 취객을 처음 차로 친 운전자 노모(50)씨를 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취객을 친 뒤 도주한 조모(56)씨와 정모(51)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차량) 혐의로 각각 형사 입건했다.
이씨는 지난 21일 오전 4시 55분부터 10여분간 수인산업도로 반월육교 인근 도로(편도 4차로)변에서 술에 취한 A(24)씨를 10여차례폭행한 뒤 도로변에 유기한 채 현장을 떠나 뒤이은 교통사고로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씨는 오전 5시 30분께 A씨를 차로 치는 사고를 낸 혐의로, 조씨와 정씨는 A씨를 잇따라 친 뒤 도주한 혐의로 각각 입건됐다.
전날 밤 친구들과 안산 중앙동에서 술을 마신 A씨는 당일 오전 4시 45분께 수원역 인근의 집에 가기 위해 이씨가 모는 택시에 탔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사고현장 인근 한 사설 CCTV 영상을 보면, A씨를 태우고 10여분 뒤 사고현장에 도착한 택시기사 이씨는 무슨 이유에선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곤 내린다.
곧이어 뒷좌석에 탄 A씨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낸뒤 도로변 한 점포로 A씨를 끌고 가 CCTV 사각지대에서 폭행했다.
이후 택시에 탔다가 내리길 수차례 되풀이하면서 A씨를 10여차례 폭행한다.
A씨는 이씨의 거침없는 폭행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맞고만 있었고, 이씨는 팔에 온힘을 실어 A씨의 뺨을 때리고 휴대전화로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이어간다.
폭행을 끝낸 택시기사 이씨가 대로변에 A씨를 두고 현장을 떠나자 A씨는 택시를 다시 잡기 위해 도로로 나와 손을 들었다가 내리기를반복하다가 결국 노씨의 승용차에 치였다.
사고 장면은 이 사설 CCTV에 찍히지 않았지만, 이후 몇분간에 걸쳐 잇따라 A씨를 친 조씨와 정씨는 구호조치 없이 현장에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3차례 차에 치인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1차 사고를 낸 노씨는 스스로 신고했고, 3차 사고를 낸 정씨는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뺑소니 행각을 벌인 조씨를 검거하기 위해 방범용 CCTV 영상에 찍힌 차량 2만대를 분석했다.
그러던 중 현장 인근에 설치된 사설 CCTV 영상에서 택시기사 이씨의 폭행 및 유기 사실까지 확인, 사고 발생 이틀만에 피의자 4명을 모두 특정하고 형사 입건했다.
택시기사 이씨는 경찰에서 "만취한 A씨가 택시 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택시비가 없다고 해 화가 나서 폭행했다"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피해자가 사망한 상태여서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론 범행동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택시 블랙박스를 수거한 경찰은 사고 12시간 이후부터 녹화된 점으로 미뤄, 이씨가 의도적으로 블랙박스 영상을 지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영상 복원을 의뢰한 상태다.
이에 대해 이씨는 "다음 근무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포맷한 것으로 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과수를 통해 A씨 부검결과와 사고 차량 3대의 감정결과를 전달받는대로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기사 이씨가 만취한 손님을 대로변에 버리고 간 '유기' 행위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해 유기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라며 "조만간 관련 수사자료가 전달되는 대로 구속수사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의 한 지인은 "사고 사실이 알려지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이런 택시기사가 계속 택시를 몰 수 있게 된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봐 우려돼 언론에 제보하기로 마음 먹었다"라며 "경찰에서 엄정한 수사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goal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