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대외경제정책 로드맵은 나왔지만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26일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올해 1년 간 대외 경제정책의 로드맵을 정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보호무역 파고와 통상마찰 우려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고 한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와 교역비중이 높고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우리 상황이 반영된 진단인 것 같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연일 보호무역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하면서 각종 비관세 장벽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속보치)은 2.7%로 2015년(2.6%)에 이어 2년 연속 2%대에 머물렀다.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미국산 자동차, 항공기, 셰일가스 등의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대미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여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수입 규제를 피하려는 생각인 듯하다. 또 대미 양자협의 채널을 "가급적 이른 시기에" 가동하기로 했다. 보호무역주의 경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역경제 통합 위주로 짜인 기존의 통상 로드맵도 보완하기로 했다. 중국과는 다각적으로 소통과 협의를 강화한다고 한다. 위기감이 높다 보니 추진 과제도 늘어 이번 회의 자료는 작년보다 66% 많은 55쪽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추진 과제 중 일부는 일정이 불확실하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대외경제정책 발표문에는 '사드'라는 단어 자체가 언급되지 않았다.
이런 정책 과제들이 다 실행돼도 한국경제가 통상마찰을 피해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그는 25일(현지시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흘 전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선언했고 이틀 전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의 대선 공약 중에는 중국과 통상마찰을 격화시킬 수 있는 고율관세 부과, 환율조작국 지정 같은 정책들도 포함돼 있다. 이런 정책들이 현실화되면 한국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미국의 보호무역 칼날이 중국을 건너뛰어 곧바로 한국을 향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때 "한·미 FTA로 대 한국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미국 내 일자리는 10만 개나 사라졌다"며 FTA 재협상 의지를 피력했다.
더구나 나라 안에서는 탄핵 정국으로 국정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의 대처에 한계가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선 주자들한테서도 경제위기 극복의 구상과 비전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걱정스럽다. 하지만 국가 부도 사태인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도 극복한 우리다.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 통상마찰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체력을 키우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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