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지진 불안합니다" 울산적십자 작년 심리상담 7배↑
태풍·수해 상담 538건, 지진 상담 451건…"상담인력 늘리고 역할 강화"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울산시 울주군 반천현대아파트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A씨는 지난해 10월 5일 태풍 '차바'의 수재민이다.
당시 빗물이 상가 지하까지 강물처럼 밀어닥치면서 A씨는 휴대전화기만 챙겨 간신히 빠져나왔다.
수해 나기 불과 며칠 전 새로 들여놓은 물품만 5억원 상당이지만, 물에 젖어 반품도 못 시켰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허탈함에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의자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보다 못한 A씨의 아내가 대한적십자가 울산지사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적십자 상담사들이 A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아 아내가 대신 상태를 설명해줘야 할 정도였다.
아내가 30분가량 상담사들과 대화를 할 때도 A씨는 그저 멍하니 있기만 했다.
이튿날 상담사들이 다시 찾아가자 A씨는 "어제는 정말 말 한마디도 하기 싫었는데, 막상 상담사들이 왔다 가니, '이렇게 찾아주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고마웠다"며 겨우 입을 열었다.
상담사들은 A씨를 상대로 불안 정도, 우울 정도, 충격 정도를 테스트하고 현재 상태를 설명해 주면서 "수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싶다"며 위로했다.
사흘 뒤 상담사들이 다시 만난 A씨는 자녀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직 무기력이 다 없어지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A씨처럼 지난해 울산적십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모두 1천181명(1천315건)이다.
이는 전년도 145명(145건)보다 1천36명, 7배 이상(714.4%) 늘어난 것으로 이 센터가 2012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것은 A씨 사례처럼 자연재난이 잇따라 울산을 덮쳤기 때문이다.
태풍·수해 피해 상담이 538건으로 가장 많았고, 지진 451건, 화재 280건, 기타 46건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상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진 이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거나, 몸이 불편한데 집이 무너지면 대피를 못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신보건전문요원 등 이 센터에서 활동하는 상담사 53명은 찾아오는 피해자를 상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재난현장으로 찾아가 심리적 치유를 돕고 있다. 상담료는 없다.
권용규 센터장은 "울산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로 인한 상담 수요도 꾸준하기 때문에 센터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며 "올해 상담 인력을 70명까지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28일 말했다.
울산적십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지난해 전국 15개 센터 중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둬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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