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툭 하면 반말·고함'…업주의 횡포에 벌벌 '청소년 노동자'

입력 2017-01-26 09:52
(전)'툭 하면 반말·고함'…업주의 횡포에 벌벌 '청소년 노동자'

5년새 청소년 상대 부당노동행위 급증…"용기, 격려 보내는 풍토돼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A(19)군은 최근 전북 익산의 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를 낸 마트 담당자로부터 면접 내내 황당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A군이 맡게 될 업무에 관해 설명한 뒤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해하지만, 동생이나 조부모가 죽더라도 출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월급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A군은 "알았으면 그만 나가보라"는 이 남성의 말에 한마디 대꾸도 못 하고 발길을 돌렸다.

건물 밖에 나와 한참을 걸어도 생각하면 할수록 울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 담당자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한 자신을 한동안 자책했다.



광주에 거주하는 B군도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장의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다.

12시간 내내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근무했음에도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간당 4천500원을 받았다.

사장은 '매장 통로 타일 위에 검은 찌든 때를 지워라' '흡연실 재떨이 녹을 제거하고 매일 닦아라' 등 30여개 수칙이 적힌 메모지를 B군에게 주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일당에서 1만원씩 차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그는 청소를 깨끗하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B군 급여에서 18만원을 일방적으로 차감하기도 했다.

사장의 협박이 무섭고 요구가 버거웠던 B군의 신분은 겨우 '고등학생'이었다.

이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상 용돈을 벌기 위해 사회로 나온 청소년들이 일부 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피눈물을 쏟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이 수시로 단속과 계도에 나서지만 어린 청소년을 상대로 한 불법 행위는 끊이지 않는다.

최근 5년간 방학 기간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한 부당노동행위는 배 가까이 증가했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청소년 아르바이트 근로보호 합동점검 결과'에 따르면 2012년과 2016년 사이 792곳 사업장에서 모두 1천622건의 부당행위가 적발됐다.

적발 건수는 2012년 229건에서 2016년 412건으로 매우 증가했다.

적발 내역을 보면 근로계약서 미작성·근로조건 명시 위반이 622건으로 가장 많은 38%를 차지했다.

최저임금 미고지 322건(20%), 근로자 명부 임금대장 미작성 303건(19%),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176건(11%) 등이 뒤를 이었다.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비를 주거나,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은 경우도 158건(10%)이나 됐다.



악덕 업주의 갑질을 참다못한 서러운 청소년들이 급기야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구 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는 지난 19일 직접 발품 팔아 조사한 청소년 노동자들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했다.

알바노조 전주지부와 알바상담소 서포터즈 '송곳'도 지난해 8월 1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설문조사 대상자 다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법정 최저 시급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단체들은 한결같이 "우리 청소년들이 악덕 업주의 부당한 대우에 숨죽이지 말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노동관계법을 충분히 알리고 부당대우에 저항할 수 있는 지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태석 전북대학교 일반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청소년들은 어리고 미숙하다는 편견이 많다"며 "나이에 따른 서열의식이 강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어린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는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규 교육과정에서도 노동 인권교육이나 노동기본법 등을 가르쳐 청소년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청소년이 사회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어른들이 용기를 주고 격려를 보내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덕종, 최은지, 고성식, 박재천, 임채두 기자)

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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