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4강 오른 바로니 "역경을 이긴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입력 2017-01-25 17:47
18년 만에 4강 오른 바로니 "역경을 이긴 파이터로 기억됐으면"

"1999년 윔블던 4강 이후 자취 감췄다가 2007년 복귀 '파란만장'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왼쪽 다리에 압박 붕대를 칭칭 감은 미르야나 류치치 바로니(79위·크로아티아)는 자신의 가방에서 조용히 묵주를 꺼내 들었다.

25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8강전 카롤리나 플리스코바(5위·체코)와 경기. 3세트 게임스코어 3-4로 뒤지다가 왼쪽 다리 통증으로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러야 했던 류치치 바로니의 '돌풍'도 이쯤에서 끝나는 것 같았다.

게임스코어 3-1로 앞서다가 내리 세 게임을 허용, 플리스코바의 기세가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메디컬 타임아웃 이후 다시 코트로 돌아온 류치치 바로니는 괴력을 발휘해 내리 두 게임을 따내 5-4를 만들었다.

벤치에서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의 서브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묵주를 목에 걸었다.

17살이던 1999년 윔블던 4강에 오른 이후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부상, 빈곤 등에 허덕이며 코트를 떠나기까지 했던 류치치 바로니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메이저 대회 4강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서브 게임만 지키면 다시 메이저 4강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상황에서 왼쪽 다리 통증마저 이겨내야 했던 류치치 바로니로서는 의지할 데가 자신이 믿는 신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플리스코바의 포핸드 샷이 네트에 걸리며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류치치 바로니는 목에 걸린 묵주를 매만지며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는 코트에 엎드려 흐느끼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1999년 윔블던 4강에 오르며 앞으로 여자 테니스계를 이끌어갈 선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불우한 가정사와 부상 등이 겹치면서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2002년 US오픈 1회전 탈락을 끝으로 메이저대회에서 모습을 감춘 그는 2007년 다시 코트로 돌아왔으나 랭킹 포인트가 없어 상금이 적은 서키트 대회 위주로 뛰어야 했다.

2006년 미국 신문과 인터뷰에서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 등에 시달린 이야기도 살짝 내비쳤다.

2010년에야 다시 메이저대회인 윔블던 무대에 복귀한 류치치 바로니는 이날 승리로 무려 18년 만에 메이저대회 4강에 다시 올랐다.

그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를 통해 '예전에 자신의 스토리를 책으로 써내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언제쯤 책을 쓸 예정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류치치 바로니는 "책을 쓰겠다는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며 "사람들이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모르면서 추측만 하니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내 이야기를 굳이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그런 사연이 있는 사람으로만 알게 되는 것도 싫다"며 "모든 역경을 참아낸 훌륭한 파이터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류치치 바로니는 4강에서 세리나 윌리엄스(2위·미국)를 상대한다. 윌리엄스는 류치치 바로니보다 1살 많은 선수로 류치치 바로니가 윔블던 4강에 올랐던 1999년에는 둘 다 '10대 유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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